이호진 태광그룹 회장(49 · 사진)에 대해 19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원곤)가 이 회장 일가의 비리를 추적한 지 3개월 만이다.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7000여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3000억원대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420여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영장에 기재됐다. 법원은 21일 이 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열고 영장발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태광그룹은 이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회장이 구속될 경우 연초부터 경영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케이블TV 채널배정 비리도

검찰은 이 회장이 계열사인 태광산업에서 △제품 생산량 조작 △판매 가능한 불량품 폐기처분으로 위장 △세금계산서 없는 거래 △허위 급여지급 및 작업복 대금,사택 관리비 착복 등의 수법으로 424억여원을 횡령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또 △태광산업의 세금 약 39억원 포탈 △티브로드 케이블TV 채널배정 대가로 주식 취득해 256억원 시세차익(배임수재) △한국도서보급 주식 1만8400주를 적정가보다 낮게 매수해 약 293억원의 손해 초래(배임) △태광골프연습장 저가 매수로 약 89억원 이득(배임) 등의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차명계좌 7000여개와 임직원 명의 주식으로 조성 · 관리해온 비자금 규모가 3000억원대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이 회장 등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21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다. 검찰은 기존 혐의 보강조사 및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상대로 한 로비 의혹 수사를 위해 이 회장의 구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증거인멸 가능성을 강조하는 등 영장 발부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동부지검의 '함바 게이트' 수사에서 강희락 전 경찰청장 구속영장 발부가 무산되는 등 불구속 기소 분위기가 강해 이 회장 구속영장 발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검찰은 이 회장의 모친인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83)는 고령을 감안해 불구속 기소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그룹 '침울'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서울 장충동 태광산업 본사는 하루 종일 침울했다. 오용일 태광산업 부회장을 비롯한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진은 오전부터 회의를 거듭하며 향후 대응책을 논의했다. 직원들은 "아직 연초인데 회장이 구속이라도 되면 경영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21일 열릴 영장실질심사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태광그룹은 이 회장이 구속되는 유사시를 대비해 그룹 업무를 살피고 있는 오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 공동 경영체제를 갖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오 부회장은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의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국내 1위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티브로드의 대표이사 부회장에도 올라 비상경영을 맡을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오 부회장이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 총괄업무를 맡게 되면 태광산업은 이 회장,오 부회장과 함께 각자대표를 맡고 있는 이상훈 태광산업 사장이 더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바스프 사장을 지낸 이 사장은 2007년 태광산업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된 인물로 지난해 6월 사장에 올랐다.

핵심 금융 계열사인 흥국생명은 지난해부터 변종윤 사장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티브로드는 이상윤 사장이 지난해 6월 그룹 사장단 인사 때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고운/조재희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