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무렵부터 18세기 중후반까지 지구에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혹한과 무더위,폭설과 폭우,극심한 가뭄 등이 불규칙하게 나타나면서 세계 평균기온이 1.5도가량 낮아졌다고 한다. 이른바 소빙하기다. 1.5도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영국 템스강과 네덜란드 연안이 얼어붙었고,가뭄 끝에 내린 폭우가 논밭을 쓸어 버렸다. 페스트를 비롯한 온갖 질병이 창궐해 유럽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우리나라도 제주 용천동굴 석순에 16세기 소빙하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연구가 있다.

기온 하락은 자연 재해에 한정된 게 아니다. 유럽에선 재해의 책임을 덮어 씌울 속죄양을 물색했다. 그 대상으로 떠오른 게 마녀다. 1561년 끔찍한 추위와 1562년 여름의 폭풍으로 흉작과 전염병이 발생하자 광범위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많은 마녀들을 불태워 죽였어도 당연히 기후는 나아지지 않았다. 기후변화가 일부 인간의 우매함과 폭력성을 자극해 엄청난 비극을 만들어낸 셈이다.

올겨울 들어 매서운 추위와 많은 눈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서울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2.6도나 낮았다는 게 기상청 조사다. 영국에는 100년 만의 혹한이 엄습한데다 폭설까지 내려 항공 대란을 겪었다. 미국 북동부 지역도 대설과 한파가 덮쳐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고 육상교통이 마비되는 홍역을 치렀다. 이렇다 보니 소빙하기가 다시 찾아온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이다.

지구는 갈수록 더워지고 있다는데 겨울이 더 추워지는 까닭은 뭘까. 여러 가설이 있으나 북극의 해빙과 시베리아의 눈 원인설이 그럴 듯하다. 온난화로 인해 북극해의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구름을 대량으로 만들어 시베리아 등 주변의 강설량을 늘리는 데서 비롯된단다. 눈이 햇빛을 반사,지표 온도를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형성된 찬 공기가 시베리아 고기압 세력을 키우게 된다. 이렇게 강화된 시베리아 고기압이 제트기류의 골을 타고 밀려내려오는 탓에 북반구 기온이 떨어지고 기상이변이 빈발한다는 설명이다. 이쯤되면 '온난화의 역설'이라 할 만하다.

대다수 기상전문가들은 기상이변이 더 자주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자연의 일시적 심술이라면 모를까 소빙하기처럼 장기적 변화라면 단단히 대비해야 할 것 같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