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공항서 이륙 도중 엔진에 불붙어 폭발
교통 장관 "테러 가능성 배제 않아"

1일 발생한 러시아 여객기 폭발 사고 피해자가 사망 3명, 부상 43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정부 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원인으로 테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 엔진 화재와 폭발은 애초 알려진 것처럼 여객기가 이륙한 후 비상 착륙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달리는 도중에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기가 기내로 들어오자 공황 상태에 빠진 승객들은 다른 승객의 머리를 밟으며 앞다퉈 탈출을 시도했다는 등의 생생한 증언도 나왔다.

◇이륙 도중 엔진 화재로 폭발 = 러시아의 악명높은 사고 다발 기종 여객기 투폴레프(Tu)-154기가 새해 첫날인 1일 또다시 사고를 일으켰다.

이타르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1일 오후 3시(현지시각)께 승객과 승무원 134명이 탑승한 Tu-154 여객기가 모스크바로 가기 위해 서부 시베리아 유전도시 수르구트 공항 활주로를 달리던 중 엔진에 불이 붙었다.

사고 여객기는 지역 항공사 '코갈리마비아' 에어라인 소속으로 알려졌다.

엔진에서 동체로 번지기 시작한 불은 마침내 연료통에까지 옮겨 붙었으며 이후 연료통이 폭발하면서 여객기는 대부분 재로 변했다.

비상사태부 대변인 바딤 그레벤니코프는 "여객기가 활주로를 달리는 도중 엔진 가운데 하나에 불이 붙었고 뒤이어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여객기를 완전 소실시켰다"며 "불길이 주변 100㎡까지 번졌다"고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사망·부상자 계속 늘어 = 다행히 승객 대부분은 폭발 직전 비상 탈출구를 이용해 대피해 대규모 인명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승객은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불에 타 숨졌으며, 또 다른 승객들은 탈출 과정에서 화상을 입거나 유독가스에 중독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 직후인 1일 124명의 승객과 승무원 가운데 1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타르타스 통신은 2일 사고기에 116명의 승객과 16명의 승무원, 2명의 기술 요원 등 모두 134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 가운데 3명의 승객이 숨지고 43명의 승객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부상자 40명이 수르구트시의 여러 병원에 분산 수용돼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중상이라고 덧붙였다.

그레벤니코프 대변인은 "부상자 가운데 10명이 중상이며 그중 6명은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나머지 4명은 골절 등의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그는 "다른 대부분의 부상 승객들은 유독가스 중독 증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테러 가능성 배제 않아" = 정부 사고조사위원회는 엔진 화재 등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마르킨 조사위원회 대변인은 "안전 규정 및 운항 규정 위반 등 몇가지 가설을 검토 중"이라며 "이를 위해 연료 표본을 채취하고 피해자 및 목격자들을 인터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고리 레비틴 교통장관은 기자들에게 "테러 가능성을 포함해 모든 가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 전문가들은 여객기가 활주로를 달리면서 이륙하려는 상태에서 왜 엔진에 불이 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테랑 항공기 시험비행사인 마고메드 톨보예프는 현지 라디오 방송 '에호 모스크비(모스크바의 메아리)'에 "여객기에 화재가 난 다른 원인을 알 수 없다"며 "테러가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승객 머리 밟고 탈출" = 사고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하는 승객들의 증언도 쏟아지고 있다.

사고 여객기에 탑승했던 러시아의 유명 팝 그룹 '나나' 멤버인 유리 리마레프는 현지 NTV 방송에 "처음에 툭하는 소리가 나더니 곧바로 비행기 뒷부분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승객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증언했다.

그는 "승무원이 승객들을 진정시키려 시도했으나 승객 중 한 명이 비상구를 열면서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자 불길이 더 크게 번졌으며 곧이어 비행기 안이 매캐한 냄새가 나는 짙은 연기로 뒤덮였다"고 전했다.

사고기 뒤쪽에 앉아있던 다른 나나 멤버 세르게이 그리고리예프는 자신의 블로그에 "사람들이 탈출하기 위해 앞쪽의 다른 승객 머리를 밟으면서 앞다퉈 비상구 쪽으로 달려나갔다"며 "눈앞에서 내 인생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지금도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다"고 밝혔다.

비상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승객은 "날개 쪽의 비상구 하나밖에 작동하지 않았다.

다른 비상구엔 문제가 있어 열리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모두 비행기 날개 위로 몰려나와 탈출을 시도했다며 일부 승객들은 날개 위에서 땅으로 뛰어내려 도망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악명 높은 Tu-154기 = 이날 사고를 일으킨 Tu-154 기종은 1960년대 처음 생산돼 70년대부터 상업 운항에 들어갔으나 90년대 말 생산이 중단된 노후 기종이다.

러시아에서도 각종 사고가 잦아 승객들로부터 기피 기종 1호로 통한다.

구랍 4일에도 Tu-154기가 이륙 20여 분만에 엔진 고장을 일으켜 모스크바 인근 공항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를 벗어나 근처 언덕에 부딪히면서 승객 2명이 사망하고 83명이 부상했다.

지난해 4월 러시아 서부에서 추락해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을 비롯한 승객 96명이 모두 사망했던 사고기도 Tu-154 기종이었다.

러시아 국영항공사 아에로플로트는 Tu-154의 안전문제를 고려, 최근 이 기종을 모든 노선에서 퇴출시켰다.

하지만 러시아 일부 지역과 옛 소련 국가들에선 여전히 주력 여객기로 이용되고 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