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년 역사를 지닌 명품 시계 브라이틀링은 '파일럿의 시계'로 불린다. 전자 시계가 아닌 기계식 시계인데도 거리환산,곱하기,나누기,평균 속도 계산,환율 변환 등 비행할 때 필요한 수학적 계산을 척척 해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타인 존 트래볼타가 이 브랜드의 모델이 된 것도 그가 인기 영화배우여서라기보다는 5000시간 이상 비행기록을 갖고 있는 파일럿이란 이유가 컸다.

브라이틀링이 '파일럿의 로망'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크로노그래프에 있다. 크로노그래프란 스톱워치 기능은 물론 거리환산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말한다. 브라이틀링의 출발은 1884년 레옹 브라이틀링이 설립한 크로노그래프를 비롯한 계수기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제작소였다.

레옹 브라이틀링은 이를 기반으로 1892년 라쇼드퐁에 시계공장을 설립했다. 그의 아들 가스통 브라이틀링은 아버지의 '손놀림'을 물려받아 1915년 세계 첫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를 만들었다. 1923년에는 타이머를 시작하고,멈추고,리셋할 수 있는 별도 버튼을 단 시계를 최초로 선보였다. 하나의 크라운(용두 · 태엽을 감는 꼭지)으로 크로노그래프를 작동해야 했던 기존 제품에서 진일보한 시계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파일럿들이 비행 중 필요로 했던 다양한 기능을 하나에 담았던 것이다.

덕분에 브라이틀링은 1939년 영국 공군인 '로열 에어포스'의 공식 제조업체로 선정돼 모든 비행기의 비행용 크로노그래프를 제작했다. 곧 이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브라이틀링을 크로노그래프의 명가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전쟁 덕분에 크로노그래프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덕분이었다.

항공시계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내비타이머'가 나온 것은 1952년이었다. 비행기를 조종할 때 필요한 거리환산,평균 속도 측정 등 각종 계산을 하면서도 현재의 시간을 볼 수 있는 이 시계가 나오자 파일럿들은 열광했다.

유려한 디자인과 뛰어난 기능 덕분에 내비타이머는 출시 4년 만인 1956년 미국 파일럿의 70%가량이 가입한 '항공기 오너 및 파일럿 연합회(AOPA · Aircraft Owners and Pilots Association)'의 공식 시계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브라이틀링은 이후 '셀프 와인딩(self-winding)' '24시간 다이얼' '빛에 반사되지 않는 사파이어 크리스탈' '날짜 창' 등을 추가하며 내비타이머를 '포켓용 컴퓨터'로 진화시켰다. 회사 관계자는 "내비타이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제품 생산이 중단되지 않는 크로노그래프 시계"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