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버스로 3시간가량 가면 군마현이라는 고장이 나온다. 눈이 많은 곳으로 겨울이면 스키와 온천을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설경과 더불어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우동이다. 430년 전통의 '미즈사와 우동'이라는 것인데 삶은 면과 산나물을 소스에 찍어 먹는다. 깔끔한 식감으로 일본 3대 우동의 하나로 입소문 나있다.

지난해 군마현에서 우연히 이 우동을 맛볼 기회가 생겼다. 줄이 길게 늘어선 집의 우동이 가장 맛있겠거니 생각하고 가장 긴 대열에 합류했다. 잠시 후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고풍스러운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할 것 같은 외관과 달리 다다미방에 마련된 식탁에는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시끌벅적했다.

10여분 기다리고 나니 부채꼴 모양의 대나무 채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을 내왔다. 신문에서 읽은 대로 한 젓가락을 떠 소스에 찍어 첫 시식을 했다. 보기에도 반투명하고 윤기가 흘러 쫄깃쫄깃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같은 식탁에 둘러앉은 안내원은 "다마루야 우동가게 못 들어보셨어요? 미즈사와 우동의 탄생과 함께 1582년 개업한 집이에요"라며 "한 그릇에 1000엔(1만4000원)인 우동을 먹기 위해 도쿄에서도 달려오는데"라고 귀띔했다.

말이 430년이지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업력을 가진 기업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을 떠나며 장수비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필자는 전통과 가업승계를 중요시하는 일본인 특유의 근성 그리고 사회 분위기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우선 '모노즈쿠리(物作)'.일본 기업인들 사이에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보이겠다는 장인정신이 강해 보인다. 어떠한 경영악재가 닥쳐도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정신이다. 그리고 이런 부모를 존경하는 후대들이 있기에 430년 전의 맛이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국내 기업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여건이 만들어져 있다. 가업승계에 대해 '부의 대물림'이라며 부정적 시선을 보내기보다는 정부가 나서 장인정신을 보전하고 있다. 필자가 만나 본 일본 기업인의 생각을 빌리면 "가업승계로 인해 중소기업이 튼튼해지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난다. 기업 가치가 올라 혜택이 근로자,주주,전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기본적인 밑바탕이다.

상속세제도 그렇다. 일본은 중소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줄 때 과세금액의 80%까지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제조업 강국 독일도 가업승계자가 7년간 비슷한 고용 규모를 유지하면 상속세를 완전히 면제해주고 있다. 미국도 내년부터 35%로 세율을 낮추는 것을 검토 중이다. 최대 65%까지 상속세를 내는 우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상속이 부의 대물림인가'라는 논쟁이 일고 있다. 상속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없애는 것이 한국판 '다마루야 우동가게'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이동근 <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dglee@korcha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