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법인세율을 5%포인트 깎기로 방침을 굳혔다. 최악의 재정적자에 빠진 일본이지만 엔고로 곤란에 처한 기업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조치다.

간 나오토 총리는 최근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과 겐바 고이치로 국가전략상에게 법인세율을 5%포인트 인하하는 방향으로 내년도 세제를 개편하도록 지시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8일 보도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재정적자를 이유로 법인세율 인하폭을 3%포인트 정도로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간 총리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우선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인하폭을 기업들의 요구 수준인 5%포인트로 결정했다.

일본의 법인세율은 실효세율 기준으로 현재 40%다. 이를 5%포인트 깎아 35%로 내리면 기업들은 총 1조5000억엔(20조2500억원) 정도 세금 부담을 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법인세 인하에 따른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기업의 설비투자나 연구 · 개발(R&D) 투자에 적용하던 세제우대 조치를 축소할 방침이다. 이 때문에 이번 법인세 인하에 따른 실질적인 기업 부담 경감액은 5000억~1조엔 선이 될 전망이다.

일본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경쟁국에 비해 높은 법인세율을 내려줄 것을 정부에 요구해왔다. 일본의 실효 법인세율(40%)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엔고 추세로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크게 악화된 가운데 법인세 부담마저 크자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일본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제조업체인 자동차 8개사는 올해 엔화 강세로만 약 8000억엔에 달하는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은 2008년 법인세수가 총 14조9000억엔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6조4000억엔까지 법인세수가 급감했다.

일본의 법인세 인하 추진은 1990년대 독일식 감세 모델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독일에서도 인건비와 세금 부담이 적은 동유럽 등 외국으로 기업 이탈이 가속화됐다. 이에 따라 독일은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었던 법인세의 세율을 1990년대부터 단계적으로 인하했다. 2008년 1월 독일 기업의 실효 법인세율은 39%에서 30%로 낮아졌다.

한편 기업 간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요국들은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산유국인 카타르는 올 10월 최고 35%였던 법인세율을 10%로 내렸다. 앞서 쿠웨이트가 최고 55%에 이르던 외국 기업 대상 법인세율을 15%로 대폭 인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도 법인세 최저세율을 각각 20%와 12%까지 인하해 외국 기업 유치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2008년 말 세계 금융위기 이후 베트남 러시아 등 19개 국가가 법인세를 인하했다. 한국도 최근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