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의 어두운 부분 = 조용미 지음. '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 나뭇잎의 뒷면은 밝아지는 걸까 앞면이 밝아지는 만큼 더 어두워지는 걸까 // 깊은 어둠으로 가기까지의 그 수많은 초록의 계단들에 나는 늘 매혹당했다' 조용미 시인의 신작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의 표제시 첫 부분이다.
갖가지 명도와 채도의 다양한 초록빛에 매혹된 시인은 이렇게 시를 이어간다.
'긴 의자 앞으로 초록의 거대한 상영관이 펼쳐졌다 초록의 음영과 농도는 첼로의 음계처럼 높아지고 다시 낮아졌다 // 녹색의 감정에는 왜 늘 검정이 섞여 있는 걸까' 시인은 흔히 자연의 강력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숲의 어딘가를 통과하며 서로 다른 명도와 채도를 띤 무수한 초록을 찾아낸다.
한 덩어리로 보이는 각각의 존재에 개별적인 색깔을 부여하는 시인은 종국에는 녹색에 늘 검정이 섞여 있다는 깨달음에 다다른다.
시인은 또 '이 봄 초록의 성분은 왜 나의 고난보다 희미한가'(시 '초록의 성분')라고 묻거나, 낡은 초록색 의자에 앉아 '어제와 가까운 곳에서 피어나는 모든 식물들은 / 왜 그렇게 붉고 부드럽고 / 뜨거웠을까'(시 '초록색 의자')라고 궁금해 한다.
색을 통해 세상을 감각하는 시인. 그의 내면의 모호했던 감정들은 다채로운 색채를 경험하며 모호함을 털고 예리해지고 뚜렷해진다.
이 봄에 한창인 초록 외에도 노랗고, 붉고, 검고, 분홍빛 가득한 색채감이 매력적인 시집이다.
문학과지성사. 132쪽.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 김기태 지음. "결석하지 않고 학교도 잘 다녔다.
법을 어긴 적도 없었다.
하루에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다.
그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김기태의 단편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두 청년, 권진주와 김니콜라이는 험난한 세상에서 '일인분'을 해내기 위해 분투했는데도 약자라는 이유로 더욱 야멸차게 다그치는 세상 앞에서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고 항변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의 노래 '인터내셔널가'를 알게 된 이들은 함께 살 집으로 이사한 첫날, 짐을 정리하며 5시간에 가까운 분량의 95개국 인터내셔널가를 주구장창 듣는다.
하지만 강고한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을 뒤엎고자 하는 변혁과 혁명의 열망 같은 건 이들에게 없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이들의 피를 끓게 했던 인터내셔널가조차 이들에게는 그저 잠시 심심풀이로 소비하는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일 뿐이다.
2024년 젊은작가상을 받은 김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표제작 외에도 데이트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의 눈에 들려고 온갖 우스운 미션을 수행하는 남녀들의 이야기인 '롤링 선더 러브' 등 다양한 인간군상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9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이밴 플레이시는 캐나다 출신 극작가다. 플레이시는 1983년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공연 애호가인 어머니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연극을 접하고 아역 배우로 활동했다. 여덟 살 때 예술학교에 진학해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자신이 연출과 극작에 더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이후 극본을 쓰고 연극을 연출하기 시작했다.대학 졸업 후 그는 영국 런던에 있는 극장 ‘해크니 엠파이어’에 프로듀서로 들어간다. 2010년에는 첫 장편 희곡 ‘그의 어머니’(The Mother of Him)를 발표해 극작가로 데뷔했다. 강간 혐의로 형을 선고받은 아들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인간 본성과 모성애를 탐구한 이 연극은 평단으로부터 극찬받으며 캐나다, 영국 등에서 무대에 올랐다. ‘그의 어머니’로 플레이시는 캐나다 극작가상, 킹스 크로스 어워드 신작 희곡상을 받았다.이후에도 성전환자, 감옥에서 태어난 아기 등 소외된 인물을 조명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구교범 기자
"예상 대기시간 세 시간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지난해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베네치아 비엔날레. 행사장인 자르디니 공원 북부에 들어선 이집트관의 현장 안내 요원이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80개 넘는 참가국이 각자 조성한 전시장 중에서도 이집트관은 유독 장사진을 이뤘다. 이유는 하나. 영상과 소리, 설치작업으로 전시장을 무대처럼 꾸민 이집트 작가 와엘 샤키(54)의 존재감 때문이었다.샤키는 이집트 우라비혁명(1897~1882)을 다룬 '드라마 1882'를 당시 선보였다. 70여년간 이어진 영국의 이집트 식민 지배의 단초를 제공한 사건이다. 아랍권 출신인 작가는 이날의 기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현했다. 미국 뉴욕타임즈는 "뮤지컬 같은 45분짜리 영상이 관객을 매혹했다"고 평했고, 영국 아트리뷰는 '2024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인' 6위에 샤키를 언급했다.이런 샤키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 소격동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와엘 샤키: 텔레마치와 다른 이야기들'에 작가가 2000년대에 만든 초기 비디오 작업이 나와 있다. '텔리마치' 시리즈(2007~2009) 등 영상 6점을 비교적 적은 대기시간을 들여 여유롭게 만날 기회다.역사의 통·번역사를 자처하는 샤키의 작업은 '기록된 역사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란 고민에서 출발한다. 이집트 출신인 그는 1970년대 원유 사업이 떠오르던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이민 갔다. 베두인족 등 토착 민족의 전통과 현대화의 물결이 충돌하던 시절이다. 서구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에 의문을 품은 작가는 아랍 사회의 모순을 화면에 담기 시작했다.이번 전시에 걸린 3
봉준호 감독(사진)의 신작 ‘미키 17’이 한국 감독 연출작으로는 처음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중국에선 누적 관객 100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며 흥행 조짐을 보인다. 다만 개봉 첫 주 수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수억달러에 이르는 제작비를 회수하기에 역부족이란 분석이 나온다. ◇ 첫 주 773억원 수입…손익분기점 넘길까9일(현지시간) 미국의 영화흥행 집계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봉 감독의 ‘미키 17’이 지난 주말 사이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지난 7일 개봉한 뒤 사흘간 북미 3807개 상영관에서 1910만달러(약 277억원)의 티켓 수입을 벌어들였다. 전 세계 흥행수입은 5330만달러(약 773억원)를 넘어섰다.앞서 영화계에서 예상한 북미 지역 개봉 첫 주 수입인 2000만달러를 밑돈 수치다. 투자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는 이 영화 제작에 1억80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글로벌 마케팅에 8000만달러가량을 추가로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계 관계자는 “흑자를 내려면 약 3억달러의 수익을 올려야 하는 셈”이라며 “(워너브러더스로선) 슬픈 주말이 됐다”고 했다.‘미키 17’은 미국 영화·드라마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트에선 평론가 점수 78%대를 기록했다. 봉 감독의 전작 ‘기생충’의 신선도 점수인 99%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워너브러더스의 글로벌 배급 담당 제프 골드스틴 사장은 “(세계 수입) 약 5300만달러로 시작한 것은 좋은 숫자”라며 “(아이맥스 등) 프리미엄 포맷에서의 강점이 입소문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봉 감독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영화관에서 보지 않는다면 후회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