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3일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 대출금 1조2천억원이 `무담보 무보증 대출'이라는 내용의 확인서를 채권단에 제출함에 따라 현대건설 매각이 또다시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외환은행은 현대그룹의 대출확인서 제출에 대해 "법률 검토를 한 뒤 9개 기관이 참여하는 주주협의회에서 추후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채권단 내부에서는 현대그룹이 대출계약서를 제출하라는 채권단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채권단이 현대그룹에 추가 시정 요구를 할 가능성이 커 공은 다시 현대그룹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보도자료를 내고 "현대그룹의 대출확인서 제출은 효력 없다"고 반발했다.

◇대출확인서 제출..대출계약서는 거부

현대그룹은 이날 현대건설 공동매각주관사에 나티시스 은행이 공증한 대출 확인서를 제출했다.

채권단과 현대그룹에 따르면 A4용지 2장 분량인 이 문서에는 ▲나티시스 은행 계좌에 들어 있는 자금은 대출금이며 ▲현대건설 주식이 담보로 제공돼 있지 않고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이 담보로 들어가 있지 않으며 ▲현대그룹 계열사가 대출에 대해 보증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대그룹은 "대출계약서 상 내용을 나티시스 은행이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공증한 문서"라며 "그동안 현대차그룹 등이 제기한 의혹들이 허위였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그러나 대출계약서 제출은 거부했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이 요구한 대출계약서는 그 유례가 없고 통상관례에서 벗어난 요구로 양해각서(MOU)상 채권단과 합의한 `합리적인 범위'에서 벗어난다"고 주장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실제 대출계약서는 70~80페이지가량 된다"면서 "나티시스 은행이 공식 확인한 문서까지 보냈는데, 대출계약서 제출을 더 요구하는 것은 (이번 논란의) 본질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채권단, 시정 요구할 듯

외환은행은 지난달 30일 현대그룹에 대출계약서와 부속서류들을 오는 7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으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양해각서(MOU) 해지 등을 결정하겠다고 밝혔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이르면 다음 주 초 주주협의회를 열어 대출확인서가 당초 채권단이 요구한 수준에 충족하는지 아니면 시정요구를 해야 하는 지 등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주주협의회는 이날 오후 실무자회의를 열어 현대그룹과 MOU 체결 경과 등을 논의한다.

외환은행과 현대그룹이 체결한 MOU에는 해명 자료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하게 되면 다시 5영업일의 시한을 주고 시정 요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법률 검토를 하고 운영위원회 등을 거쳐 추가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 내부에서는 그러나 현대그룹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대출확인서가) 현대그룹이 지난번 제출한 소명자료 수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채권은행 관계자는 "대출계약서 제출을 요구한 것은 구체적인 대출 조건과 위법사항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취지"라며 "그런데 그동안 현대그룹이 낸 보도자료나 공시자료 수준의 자료를 낸 것은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이 주주협의회에서 시정 요구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대건설 매각, 장기전되나

현대그룹이 채권단의 시정 요구에도 대출계약서 제출을 끝내 거부할 경우 현대건설 매각은 장기화하고 더욱 복잡하게 꼬일 수 있다.

우선 채권단이 MOU 해지를 결정하고 현대기아차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변경하거나 재입찰을 시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현대그룹은 채권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이 대출계약서를 제출하더라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대출계약서 상 위법사항이 발견될 경우 현대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당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등 일각에서는 현대그룹이 채권단의 압박에도 대출계약서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은 자금 출처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제3자가 현대건설 주식, 현대그룹 계열사 자산을 담보로 나티시스 은행에 제3자 보유 자산을 담보로 제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나티시스 은행의 손자회사인 넥스젠캐피탈에 현대그룹이 주식 또는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나티시스은행은 넥스젠캐피탈 자산을 담보로 현대그룹에 대출을 했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대출계약서상 위법사항이 없다 하더라도 논란이 쉽게 일단락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보인다.

채권단 관계자는 "세간에 나온 여러 의혹이 대출계약서 상으로 확인되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이 경우 의혹이 해소되기보다는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조재영 기자 indigo@yna.co.kr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