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자 형사조사, 재발방지 제도개선 병행
클린턴 "다른 국가와의 우호관계 이상없을 것"

미국이 폭로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의 25만 건에 달하는 대량 문건폭로 사건으로 단단히 화가 났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의 전언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지켜보고 "심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새로운 한주가 시작된 29일 국무장관, 법무장관이 연이어 나서 전방위로 파문수습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번 폭로파문이 미국을 당혹감을 넘어 분노에 빠뜨린 이유는 문건의 내용에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하순 위키리크스가 아프가니스탄전과 관련한 문건을 폭로했을 당시만 해도 미 국방부가 나서 '내부 고발자' 단속을 철저히 하는 선에서 파문을 가라 앉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과 다른 국가간에 주고받은 외교전문이 고스란히 공개됨으로써 우방간에도 얼굴을 붉혀야 할 일이 발생하는 등 파문의 성격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장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이번 사태는 세계 외교가의 9.11테러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나설 정도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응은 폭로사건의 책임자 조사 및 처벌, 유사 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행정부내 제도정비라는 두갈래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먼저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이날 "법무부는 위키리크스의 정부 기밀문건 폭로 수사과정에서 국내법 위반이 드러날 경우 기소할 것"이라고 `의법처리'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방부의 경우에는 컴퓨터에 적절한 방화벽을 설치하지 못했거나, 문서 유출을 방지하는데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실무자들에 대해 책임을 물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이번 폭로사건과 관련된 책임자를 추적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나섰다.

클린턴 장관은 특히 "미국은 외교관들의 개인적인 관점과 판단, 외교상대와의 사적인 토론 등 기밀이어야할 정보가 폭로된 점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미국과 다른 국가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는 이런 폭로에 따른 시련을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전문은 원래 정책결정 사항을 반영한 것이 아니고, 완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만큼 이번에 공개된 전문을 통해 드러난 일로 미국과의 파트너십이 훼손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관련국들에 우회적으로 호소한 셈이다.

클린턴 장관은 일단 국무부에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밀 문건 취급 문제 등에 관한 전반적인 제도개선을 점검토록 지시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톱다운' 형태로 이뤄질 범정부 차원의 제도개선은 백악관이 팔을 벗고 나섰다.

제이콥 루 백악관 예산국장은 "이런 종류의 문건 유출은 용납될 수도, 용서받을 수도 없다"고 강조하면서 기밀보호 문제를 점검할 '보안점검팀'을 각 부처에 설치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제도정비가 문건유출을 완전히 막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의 공무원과 군인 등 최대 300만명이 각종 기밀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내부고발자를 방지하기 위한 정신교육 등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제도정비만으로는 문건유출을 막기에는 불충분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ks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