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대북정보 낱낱이 공개…한·중관계 부정적 영향 우려
정부 '추가 폭로' 가능성에 긴장…美와 협의 착수

미국 위키리크스 기밀문서 폭로사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에 폭로된 한반도 현안 하나 하나가 강력한 폭발력을 띠는 내용을 담고 있어 외교정책 추진과정에서 부정적 여파가 초래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우리 외교의 가장 민감한 파트인 대북.대중 현안과 관련해 미국 당국과 나눈 대화내용이 여과없이 공개된 점이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을 바라보는 한.미의 부정적 시각과 중국 당국자에 대한 인물평,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관련한 정보사항까지 속속들이 공개돼 외교당국으로서는 상당히 곤혹스런 상황에 놓이게 됐다.

문제는 이번 파문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제2, 제3의 폭로로 우후죽순 확전될 가능성이 높은 점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에 착수하며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한반도현안 핵심내용과 외교부 반응 =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한반도 관련 문건은 ▲올 1월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로버트 킹 대북인권특사와 나눈 대화내용 ▲ 외교통상부 제2차관으로 재직 중이던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이 올 2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의 오찬내용 ▲김성환 외교장관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있던 올 2월3일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나눈 대화내용 ▲지난해 4월27일 주한 미 대사관 관계자가 한국 국방부 소속 모 과장과의 접촉을 통해 파악한 내용을 근거로 작성.보고한 외교전문 등이다.

이중 외교가가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대북.대중관련 정보사항이다.

우선 유명환 전 외교장관이 해외에 근무하던 다수의 북한 고위관리가 최근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말한 내용이 공개돼 외교가의 초미 관심사로 부상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과 북한붕괴 시한을 전망한 내용도 등장했다.

한국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지난 2월말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와 한 오찬에서 김정일 사후 2-3년 안에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전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월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만난 자리에서 김 국방위원장이 지금 북한에서 굳건한 통제력을 갖고 있지만 한국 전문가들은 그가 2015년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사항도 나왔다.

김성환 외교장관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던 지난 2월3일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차관보와 대화에서 한국 정부가 지난해 가을부터 북한과 정상회담을 위해 접촉했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됐다.

또 당시 김 장관의 발언 중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려고 중국을 방문하는데 북한 당국이 평양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에서 폭탄을 찾아냈다는 정보당국의 분석 등 기밀사항이 포함돼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작년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에 대한 국방부 당국자의 판단을 본국에 타전한 사실도 나타났다.

중국과 중국 관리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등장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천영우 외교수석은 스티븐스 대사를 만나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 특별대표에 대해 '가장 무능하고 오만한 관리, 북한과 비핵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홍위병 출신'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중국이 북한과의 특수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김정은으로의 권력세습에 대해서도 분명한 정보를 갖지 못하는 등 북한 내부 사정에 내부 사정에 그리 밝지 못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북핵 6자회담과 관련 내용도 소개됐다.

중국 당국자가 지난해 4월 미국 측에 북.미.중 3자회담 의사를 타진했다는 내용도 일본 언론에 보도됐다.

통일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의견조율 내용도 공개됐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지난 2월 본국 정부에 보낸 문건에서 한국 정부가 `통일한국'에 대비해 중국에 대한 경제적인 유인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밖에 지난해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지원과 관련해 한국에 5억달러 규모의 재정지원을 요청했다는 내용이나 2008년 금강산 관광 도중 숨진 고(故) 박왕자씨가 금강산 지역 북한 군부대의 군기 강화 기간에 피살당했다는 정황도 외교전문을 통해 소개됐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관련 사항 전체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대응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 유관부처들도 '확인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정부 대책 마련에 분주 = 파장이 커지면서 정부는 당혹감 속에서 이번 사태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비공개에 부쳐져야 할 정부의 외교교섭 과정과 정보사항이 줄줄이 폭로되는 사상초유의 상황이 발생하면서 자칫 외교정책 추진에 부정적 영향이 끼쳐질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폭로된 전문에 중국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이와 관련한 한.미간의 의견조율 내용이 등장하면서 한.중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는 이에 따라 미국 정부와 협의를 진행하며 앞으로 공개될 한반도 관련 현안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앞으로 어떤 문건이나 내용이 나올 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현재로서는 대응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일단 미국과의 협의를 진행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