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상생활을 살다보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직장이 있는 사람은 그 직장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머지 출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만원 지하철에 시달려야 한다는 데 대해 짜증을 낼 뿐,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장을 찾느라 발품을 파는 실업자나 비정규직 근로자를 생각하면 야근을 하느라 개인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거나 상사로부터 질책 받았다고 볼멘소리를 내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바로 이런 현상이 우리가 몸 담고 살고 있는 공동체와 북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를 비교할 때 나타난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반면,그들은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이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라고 할 때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자유라고 하면 소극적 의미의 자유를 떠올린다. 소극적 자유란 타인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자유분방한 삶이 그 전형이다. 이처럼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작은 정부나 큰 시장 등 자유주의에서 함의하는 자유를 뜻할 뿐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인 범주로만 자유를 한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뜻을 축소시킬 가능성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란 타인으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지배'받지 않을 자유를 말하기 때문이다. 원래 영어로 자유를 뜻하는 'freedom'이라는 용어는 그 어원이 독일어로서 노예가 아닌 '자유인'을 의미했다. 이 자유인이야말로 자유의 여신상에서 음미하게 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북한은 어떠한가. 김일성 ·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에 이르는 3대 세습이 서구의 외신기자들까지 대거 초청한 자리에서 이뤄졌다. 그러면서도 인민민주주의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인민'이 없는 '인민민주주의'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이런 북한 체제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진보 지식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많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야당의 어느 중진급 정치인은 한 술 더 떠 김정은의 3대 세습이 "북한에서는 상식"이라고 강변하고 나섰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민민주주의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랑하는 국가에서 왕조국가처럼 세자를 책봉하는 권력 승계가 이뤄진다면 '상식'이 아니라 '몰상식'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북한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흉내 낸 '짝퉁 상품'들이 넘쳐난다. 우선 종교가 그렇다. 장충교회도 있고 봉수교회도 있어 외국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고 있긴 하나,그렇다고 가톨릭이나 개신교를 믿을 수 있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를 믿을 자유는 없고 오직 종교를 반대할 자유만 있는 곳이 북한이며,인민은 없고 노예만 넘쳐나며 단 한사람의 노예주만이 군림하는 곳이 북한이다.

우리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동족의 입장에서 그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노예처럼,때로는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을 방관하면서 어떻게 민족끼리의 정과 유대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북한 주민들을 우리와 똑같은 자유인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같은 민족이라는 데서 나오는 감정이다. 이들을 노예처럼 살아가도록 방치하는 것은 '민족적 사랑'이 아닌 '민족적 죄악'일 터다. 민족주의자라고 해서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의 차이에 대해 눈 감는 일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민족끼리'를 외치는 민족주의자일수록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주인들의 공동체를 꿈꾸어야지,노예로 살아가는 사악한 공동체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해서는 곤란하다.

박효종 < 서울대 교수·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