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번에도 말을 아꼈다. 13일 최고위원회에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훈장추서와 국립묘지 안장과 관련한 여러 얘기가 나왔지만 구체적 언급 없이 "남북교류 협력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는 원론적 발언으로 비켜났다.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재협상 문제에 대해 보여준 '전략적 모호성'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반면 정세균 최고위원은 "북한 주체사상의 이론적 틀을 닦고 망명 후에도 주체사상을 부인한 적이 없는 분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며 지도부 가운데 가장 강한 톤으로 반대했다. 그는 앞서 FTA 재협상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당 대표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한 · 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정동영 최고위원은 황 전 비서건에 대해서는 정 최고위원과 같은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새 지도부 내 '빅3' 간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손 대표가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신중모드를 이어가는 데 반해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은 당내 '뜨거운 감자'를 정면에서 다루며 정치적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어서다. 손 대표는 4대강 사업 등 여권과 각이 서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 투표도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하면서도 폭발성이 큰 사안은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한 · 미 FTA재협상 주장에 대해선 즉각적 입장 표명 대신 여론수렴을 위한 특위구성 카드로,황 전 비서 조문은 비서실장인 양승조 의원을 통한 '대리조문'으로 피해갔다. 이날도 발언의 대부분을 전날 방문한 평택 쌀농가에서 느낀 '농심'을 전하는 데 할애했다. 정치적 이슈를 가급적 멀리하고 민생이슈에 매달리는 '로키'행보를 이어가겠다는 계산이다. 반면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은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손 대표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때문에 '빅3' 간 당내 선명성 다툼이 조기에 가열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당 일각에서는 손 대표의 신중모드에 대해 "지나친 신중모드가 '어정쩡한 행보'로 보여지면 야당의 정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 대표 측 인사는 "인선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