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 바로수 집행위원장과 정면 충돌

11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27개국의 의견을 조율하고 역내 경제개혁 등을 논의하기 위해 16일 소집됐던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험악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개성이 강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이 오찬 도중 프랑스 정부의 집시추방 정책을 둘러싸고 정면 충돌했기 때문이다.

EU 소식통들은 사르코지 대통령과 바로수 집행위원장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바람에 오찬 분위기가 일순간 험악하고 냉랭해졌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정면 충돌을 야기한 사안은 프랑스 정부의 집시추방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추방 및 말살에 빗댄 집행위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었다.

비비안 레딩 EU 집행위 부위원장 겸 사법ㆍ기본권 담당 집행위원이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럽에서 두 번 다시 목도돼서는 안 되는 광경"이라고 밝혔고 바로수 집행위원장은 15일 레딩 집행위원의 개인 견해가 아니라 집행위원단의 공식 견해라고 발표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정상회의 오찬에서 집시추방을 나치의 유대인 추방ㆍ말살에 비유한 게 집행위원단의 공식 견해냐고 거듭 따졌고 바로수 집행위원장이 맞서면서 고성이 오갔다는 것.
정상회의 뒤 헤르만 판롬파위 상임의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한 바로수 집행위원장은 사르코지 대통령과의 충돌 사실 여부를 묻는 말에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그 문제에 대해 더 언급하지 않겠다"고만 답했다.

바로수 집행위원장이 다소 언짢은 표정으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자 충돌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몰라도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인 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은 별도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바로수 집행위원장과의 충돌을 부인하면서 "회의에서는 집시 추방을 나치의 유대인 추방ㆍ말살에 빗댄 집행위원단의 견해 표명은 '언어도단'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는 불법적으로 설치된 집시촌을 철거할 것"이라며 집시추방 정책을 지속할 것임을 밝혔다.

판롬파위 상임의장은 "법의 집행이라는 측면에서 개별 회원국과 집행위 모두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갖는다"고 양시ㆍ양비론적 시각을 보이면서 집행위원단의 견해 표명에 대해서는 직접적 언급을 피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정상들은 이탈리아의 반대 철회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정식서명과 잠정발효가 승인된 것을 환영했으며 최악의 대홍수 피해를 본 파키스탄의 경제 복구를 위해 즉각적으로 교역 특혜조치를 시행하고 중장기적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했다.

(브뤼셀연합뉴스) 김영묵 특파원 econ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