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영국 더타임스(The Times)로부터 전화를 받고 처음엔 귀를 의심했습니다. 포스텍이 세계대학평가에서 28위를 차지했다며 축하한다고 하더군요. 떨리는 마음에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

백성기 포스텍 총장은 16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까지 세계 20위권 대학에 진입한다는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섰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감격에 겨워 목이 메인 듯 간간이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포스텍은 이날 영국의 일간지 '더타임스'와 톰슨로이터사가 함께 실시한 '2010 세계대학평가'에서 28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각 기관과 언론사의 세계대학평가에서 국내 대학이 30위권에 진입한 것은 포스텍이 처음이다. 포스텍은 2008년 이 평가에서 188위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34위로 뛰어올랐고,올해는 100계단 이상 수직 상승했다.

종합대학을 뺀 공과대로만 따지면 칼텍(캘리포니아공대),MIT(매사추세츠공대),취리히공대,조지아텍 등에 이어 세계 5위에 올라 세계 최고의 명문 공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앤 므로즈 '더타임스' 에디터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과대학인 포스텍이 탁월한 성과를 바탕으로 28위에 랭크됐다"며 "진정한 세계적 수준(truly world class)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후한 점수를 줬다.

'더타임스'의 대학평가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대학 규모나 연륜을 중시하는 다른 기관의 평가와는 달리 실질적인 연구 성과와 교육 여건을 집중 분석한 뒤 순위를 매겨 깐깐한 것으로 이름이 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평가는 △교육 여건(30%) △연구실적(30%) △논문 인용도(32.5%) △기술이전 수입(2.5%) △국제화 수준(5%) 등 대학 교육의 질과 연구 성과를 측정하는 5개 분야로 나뉘어 진행됐다.

포스텍은 5개의 모든 영역에서 골고루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중심 대학답게 연구 분야에서 고득점한 것이 순위 상승에 결정적이었다. 연구 성과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인용-연구성과 영향력' 부문에서 포스텍은 96.5점으로 만점(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기술이전 수입을 평가하는 '기술이전 수입-혁신' 부문에서는 만점을 얻었다. 백 총장은 "학생 교수 직원 등 대학의 전 분야에 걸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혁을 추진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포스텍의 이번 성과는 백 총장의 파격적인 개혁정책이 밑거름이 됐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분석이다. 그는 2007년 취임 이후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5~15%)의 졸업을 유보시키는 등 학생 경쟁력을 높이는 데 우선 순위를 뒀다. 또 테뉴어(정년 보장) 교수라도 3년마다 연구 실적 등을 기준으로 재평가를 실시하는 등 교수들의 질적 관리에도 힘을 쏟았다.

실제 백 총장 취임 후 교수 대 학생 비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현재 교수 1인당 학생이 5.6명에 불과하다. 세계 명문대와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학생 1인당 교육투자비도 과감하게 늘렸다. 올해는 학생 1명에게 받는 등록금의 12배가 넘는 4800여만원을 교육비로 쏟아붓고 있다. 그는 "앞으로 과학 · 기술지식이 미래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고 과학과 기술을 모르면 리더가 될 수 없다"며 차세대 리더 육성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백 총장은 이번 평가 결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배가 고프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개혁정책을 더욱 세게 밀어붙일 생각이다. 그는 "이번 평가로 포스텍이 그동안 질적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것을 인정받았다"며 "이에 만족하지 않고 국가와 인류에 공헌하는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평가에서는 미국 하버드대가 1위를 차지했다. 칼텍,MIT,스탠퍼드대,프린스턴대 등이 뒤를 이어 미국 대학이 1~5위를 휩쓸었다. 아시아권 대학 중에는 홍콩대가 21위,도쿄대가 26위에 이름을 올렸다. 포스텍 외에 국내 대학으로는 KAIST 79위,서울대 109위,연세대 190위 등이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