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가 무슨 영업사원입니까. 돈 구하러 다니느라 연구는 꿈도 못꿉니다. "

경남의 한 사립대에 재직 중인 P교수는 요즘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자신에게 할당된 금액을 기한 내에 끌어오지 못하면 어렵게 얻은 교수직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P교수의 동료들도 비슷한 처지다. 지난 여름방학 내내 지역 기업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기부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대학 측은 교수들을 '2인 1조'로 팀을 만들어 팀당 3개 기업을 두 번 이상 방문토록 했다. 이 대학 S교수는 "학자로서의 본업은 팽개친 지 오래"라고 하소연했다.

학생 수는 갈수록 줄고 기부금마저 뚝 끊기면서 등록금으로 버티던 대학들이 파산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한계 대학'일수록 재단이 부실,학교의 재정난을 '나몰라라'하는 식이어서 벼랑 끝까지 내몰린 형국이다.

◆부도 위기 맞은 대학들

학생 수가 500여명인 경북의 K대(4년제 사립대)는 작년 말 문을 닫을 뻔했다. 등록금 수입 등으로 35억원가량의 운영수익을 올렸지만 건물 보수 등에 비용이 더 들어가 2700여만원의 손실을 냈다. 산 · 학협력 사업을 통해 1억9000여만원을 벌었지만 그마저도 산학협력단 운영비용(2억여원)을 빼고 나니 적자였다. 대학 측은 등록금 인상 없이는 더 이상 학교를 운영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2008년(613만원)보다 3.2% 인상한 633만원을 받았다.

이 대학은 2008년 기준 총자산(교비회계 기준)이 12억원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 수준이다. 부채는 7억6000여만원에 달한다. 연구 · 건축 · 장학 · 퇴직 등을 대비해 쌓아둔 적립금은 422만원뿐이다.

인근의 또 다른 K대의 사정도 비슷하다. 전체 자산 규모는 18억여원에 불과하고 부채가 10억3000여만원이다. 2008년에 6억6000여만원의 기부금을 받았지만 운영비로 모두 쓰고 따로 적립한 기금은 한 푼도 없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받는 등록금 말고는 대학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재정 확충 수단을 갖지 못한 대학들은 사실상 부도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등록금 없이는 하루도 못버텨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08년 일반대학(4년제) 185곳의 세출액 18조5183억원 중 등록금 수입으로 구성된 교비회계(국 · 공립대는 기성회계) 세출액이 13조7131억원으로 전체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각 대학이 쓴 돈의 대부분이 등록금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미국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이 평균 30% 선인 것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전문대는 전체 세출액(3조7385억원) 가운데 89%(3조3409억원)가 등록금 수입이어서 의존율이 심각하다. 전문대의 경우 2008년 기준 산 · 학협력 수익은 사립이 평균 1억7000여만원,국 · 공립은 1억3000여만원에 불과하다. 제주도에 있는 D대는 2008년 산 · 학협력 사업을 통해 2억1800여만원을 벌었지만 산학협력단 운영비용(2억1900여만원)이 더 많아 손실을 냈다. 등록금 외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토지,건물 등 수익용 재산 확보율도 낮다.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이 10%를 밑도는 대학이 일반대 25곳,전문대 32곳에 달한다. 기본재산 확보율은 전체 수익에서 대학이 가진 재산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재단이 부실한 사립대는 재단 전입금에 기댈 수도 없는 형편이다. 재단 전입금이 교비회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일반대가 평균 10%,전문대는 2% 안팎이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E대는 지난해 재단으로부터 2억2000여만원의 전입금을 받았다. 하지만 전체 수익의 1.3%에 불과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