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야음동에 사는 이현수씨(43)는 요즘 들어 웃음이 부쩍 늘었다. 지난 7월부터 지역 케이블방송인 울산GS방송의 한 협력업체에 정규직으로 취업해 20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어서다. 입사한 지 고작 2개월 남짓 흘렀지만 전신주에 올라가 케이블을 연결하는 일부터 방문 판매까지 한번 맡겨진 일이라면 반드시 완수했다. 똑 부러지는 일처리 덕분에 그는 일찌감치 사장에게 인정받았다. 사장한테서 "여기 있기에는 아까운 인재"라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다.

이씨는 5년 전인 2005년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진다고 말한다. 사연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아남그룹 공채 24기로 입사한 그는 전도양양한 직장인이었다. 당시 아남그룹 최고 계열사였던 아남전자 영업부에 배속돼 1998년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도 일자리를 잃지 않고 영업맨으로 일했다.

하지만 이후 회사 경영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그 역시 2002년 정든 회사를 떠나야 했다. 여기다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에 편승해 투자했던 주식이 곤두박질치면서 2억원이란 거액의 빚까지 떠안았다.

이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10년간 갈고 닦은 영업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는 보험업을 선택했다.

특유의 성실성과 빠른 습득 능력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억대 연봉을 받는 보험설계사가 됐다. 경남지역 일대 하이마트 전자랜드 등 전자용품점에 직원을 파견하는 용역사업도 함께 했다.

눈코 뜰 새 없었지만 수입은 짭짤했다. 당시 그가 낸 소득세만 연 1000만원이 넘었다. 2억원에 달했던 빚도 3000만원가량으로 줄었다.

그러다 한 친구로부터 자동차 의자 프레임을 만드는 사업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때가 2005년이었다. 친구를 믿은 게 잘못이었다. 1억원이 넘는 돈을 사기당했다. 치명타였다.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타고 다니던 차도 팔아야 했다. 여전히 3000만원 정도의 빚이 남았다. 생활비도 없어 카드론을 사용해 하루하루 버텼다. 만기가 돌아오면 다른 카드로 돌려 막았다.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컸던 그는 급기야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 명도를 하기 직전까지 6개월여를 두문불출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가로 보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원래 했던 보험 영업은 물론 택시운전과 막노동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그러다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를 알게 돼 그해 9월 신용회복 신청을 했다. 다행히 개인워크아웃 대상자로 판정받아 이자와 연체이자 150만원가량을 탕감받을 수 있었다. 카드 빚으로 불어난 원금 3500여만원은 8년간 월 37만원씩 나눠 갚을 수 있도록 재조정됐다.

하지만 취업은 여전히 어려웠다. 정규직은 언감생심이었다. 취업을 하고 싶어도 신용불량자라는 '딱지'와 사십줄에 들어선 나이가 발목을 잡았다. 2007년 말부터는 아예 일이 없어 1년가량 놀기도 했다. 생계는 아내가 피아노 레슨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어오는 돈으로 겨우 해결했다.

소득이 없으니 돈을 갚을 수도 없었다. 결국 신복위에 사정해 2009년 9월부터 6개월간 빚 상환을 유예받았다.
신복위 취업지원센터에 구직 신청을 등록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딱 3개월 만에 연락이 왔다. 굴지의 전자회사에서 영업맨으로 일한 경력을 눈여겨본 한 케이블방송 협력업체에서 채용 의사를 밝힌 것이다. 나이 43세에 뜻하지 않았던 정규직 취업을 이뤘다. 그를 채용한 ㈜삼호의 임성철 이사는 39세로 그보다 젊다. 동료들 가운데 이씨보다 나이 많은 직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임 이사는 "이씨가 금융채무 불이행자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 "한여름 땡볕에 전신주를 오르내리다 보면 20대도 쓰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40대인 이씨는 타고난 근성과 성실함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이씨는 신용불량자에 대해 사회가 갖고 있는 선입견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그는 "신용회복자들은 사회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충분히 스스로 일어설 수 있고 일하고자 하는 의욕도 누구보다 강한 사람들"이라며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아닌데 괜히 나쁜 사람처럼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아 억울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에 취업하면서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자신의 사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유통업 서비스업 쪽에서 일을 하니까 이를 발판으로 제조업 분야에 진출하고 싶다"며 "나중에 내 사업체가 생긴다면 신용회복자를 꼭 1명 이상 고용해 지금까지 사회에 진 금전의 빚뿐만 아니라 마음의 빚도 함께 갚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