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25일 오후 평양에 도착,1박2일 일정에 들어갔다.

카터 전 대통령은 평양공항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영접을 받은 후 만수대의사당으로 이동,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을 가졌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6자회담 북측 대표인 김계관 부상과 관계부문 일꾼들이 참가했다고 방송은 밝혔으나 구체적인 담화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 김 상임위원장과 백화원 영빈관에서 만찬을 갖는 등 북측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앞서 미국 폭스뉴스는 카터 전 대통령이 26일 북한에 억류중인 곰즈와 함께 귀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방북에는 부인 로절린 여사와 카터센터 대표인 존 할드만 박사 등이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 방송은 "카터 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측과 접촉한 것으로 보이지만 대통령의 친서는 갖고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1994년 김일성 주석과 면담한 카터 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것으로 알려져 김일성 · 김정일 부자를 나란히 면담한 유일한 미국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 정부는 대외적으로 지난 1월 불법입국 혐의로 북한에 억류돼 8년의 노동교화형을 받은 미국인 곰즈를 석방시키기 위한 인도주의적 방문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이 1994년 6월 1차 북핵위기 당시에도 평양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만나 핵개발 일시 동결과 그해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이번 방북길에도 적지 않은 정치적 의견교환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카터 전 대통령은 당시 김 주석에게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주선해 이를 성사시켰지만 김 주석의 사망으로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외교가에선 카터 전 대통령이 이번에도 모종의 역할을 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되면 남북문제가 자연스럽게 거론될 것이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 남북관계를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는 데 상당부분 기여할 것"이라며 "대승호 송환 등 남북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하지만 한 · 미 행정부의 내부 기류는 조금 다르다. 빌 버튼 미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인도적 차원의 임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행정부가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보안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도 곰즈의 석방을 위한 고위급 인사의 방북이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시기선택 등에 민감한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혁 기자/워싱턴=김홍열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