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크로스는 절대 하지 마라. 측면 공격수가 볼을 잡으면 중앙 미드필더들은 볼을 받으러 나가라!"
말 그대로 기분 좋은 연착륙이다.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조광래 감독의 `예비 황태자' 윤빛가람(경남)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한 최효진(서울)이 선제골과 결승골을 넣었고, '캡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결승골 도움을 기록하는 보기 좋은 그림을 완성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에서 2-1로 승리를 이끌었다.

조 감독은 사령탑 데뷔전에서 승리해 기분 좋은 출발을 보여줬고,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린 윤빛가람은 '스타 탄생'의 기쁨을 맛봤다.

더불어 수비 조직력과 공격력 강화 차원에서 스리백(3-back) 전술을 내세운 조 감독의 전술 실험은 비록 세트피스 상황에서 실점했지만 중원에서 보여준 짧고 빠른 패스와 위협적인 스루패스는 앞으로 조광래식 축구'의 발전 방향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무책임한 크로스는 절대사절'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에서 선제골 스로인 도움과 결승골을 터트리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최효진은 경기가 끝나고 나서 "경기에 앞서 조광래 감독이 절대 무책임한 크로스를 띄우지 말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조 감독은 파주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시작한 첫 소집훈련에서 선수들에게 나눠준 '전술 설명서'에도 공격시 볼을 공중으로 띄우는 것을 자제하라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에 대해 젊은 공격수 이승렬(서울)도 "세밀한 패스를 원하고 볼을 띄워서는 안 된다는 게 조광래 감독님의 요구사항이었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의 말을 종합하면 조 감독은 나이지리아전에 앞서 공격방향을 바꾸기 위한 대각선 패스 외에는 크로스를 하지 말고, 패스는 항상 미드필더를 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무리한 공중볼 패스 대신 최전방의 박주영(모나코)과 박지성, 조영철(니가타)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으로 볼을 내줘 골 기회를 만들라는 게 조광래 감독의 주문이었고, 박지성의 스루패스에 이은 최효진의 결승골이 '조광래식 축구'의 본보기였다.

◇윤빛가람-기성용 '든든한 허리진'
조광래 감독은 뛰어난 대표팀 미드필더 출신이어서 그런지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를 선호한다.

이 때문에 중앙 미드필더들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조광래 감독이 믿고 꺼낸 카드는 윤빛가람이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경남에서 이미 검증을 마친 만큼 선발투입했고, 선제골과 더불어 풀타임을 뛰면서 기성용(셀틱)과 함께 중원을 든든히 지켰다.

대표팀 관계자는 "파주NFC 소집훈련을 하면서 조 감독이 원하는 전형적인 미드필더가 별로 없었다"며 "기성용-백지훈(수원) 조합도 생각했지만 둘 다 공격적 성향이 강해서 경기조율과 패스능력이 좋은 윤빛가람이 기성용의 파트너로 선발출전하게 됐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또 "조 감독이 기성용의 수비 가담에 대해서도 칭찬을 많이 했다"며 "경기를 끝내고 나서 기성용에게 '오늘 최고의 수비 능력을 보여줬다'고 칭찬했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조 감독은 훈련 과정에서 기성용에게 수비 가담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를 조율하는 미드필더로서 후방 수비수가 맨투맨 방어를 하고 있는지, 자유롭게 있는지 빨리 파악해 미드필더의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경기 중에 뒤쪽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느냐는 게 조 감독의 지적이었다.

이 때문에 조 감독은 기성용에게 수비 가담에 대한 요구를 많이 하면서 윤빛가람과 호흡을 강조했고, 결과적으로 중원 장악의 시발점이 됐다.

◇옥석이 가려진 '젊은피 실험'
조광래 감독은 전날 경기를 끝내고 기자회견을 통해 "새로 선발된 선수들이 잘했다고 본다.

아쉽다면 전술적인 부분에서 아직 이해가 덜 된 부분이 있었는데 앞으로 지속적인 훈련을 한다면 더 큰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대체로 만족하지만 실망한 선수도 있다는 얘기다.

조 감독은 젊은 수비자원인 김영권(FC도쿄)과 홍정호(제주)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조 감독은 경기 직후 "두 선수가 이정수와 조용형, 곽태휘의 대타로 올라설 수 있는 수비수다"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대비해 계속 활용할 수 있는 수비수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박지성과 호흡을 맞춘 조영철도 힘과 스피드가 좋다는 인정을 받았고, 윤빛가람은 이미 '예비 황태자'로 우뚝 섰다.

반면 후반에 교체투입된 이승렬과 백지훈은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대표팀 관계자는 "전반에는 박지성과 조영철이 중앙으로 파고들며 유기적인 공격을 했지만 후반에 이승렬과 백지훈이 투입된 뒤 좌우로 많이 퍼지는 공격 형태를 보여줬다"며 "조 감독도 '소속팀에서 하던 경기스타일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한 만큼 대표팀 전술에 빨리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