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대 은행들이 막대한 자본력과 지점망, 편리한 서비스 등을 앞세워 소규모 은행들을 밀어내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WSJ)은 20일 금융위기 당시 정부의 지원을 받은 거대 은행들이 일부 금융기관을 합병하면서 덩치가 더욱 커져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형 은행들의 시장 장악은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시내 중심가 판도를 보면 잘 나타난다.

은행들이 몰려 있는 오렌지 에비뉴에서만 지난 5월 지역은행인 플로리다 비즈니스 은행이 바로 1년전 개점했던 대출사무소의 문을 닫은 것을 포함해 모두 6개 은행 점포가 간판을 대형은행으로 바꿔 달았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와 JP모건체이스, 웰스 파고 등 거대 은행들이 지역의 소규모 은행들을 몰아내면서 고객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플로리다 비즈니스 은행의 제프 와그너 CFO는 대형 은행들이 기업 관계자들에게 자기네 은행과 거래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이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대출을 해주지 않겠다고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대형은행들의 덩치는 금융위기를 맞아 더욱 커졌다.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해준데다 위기를 못 넘기고 파산한 여타 금융기관들을 합병하면서 모기지는 물론이고 일반예금, 소기업 대출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금융업무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는 위치로 부상했다.

이런 시장 집중 문제에도 불구하고 오는 21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을 앞둔 금융개혁 법안은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법안으로 인해 대형 은행의 수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JP모건, 웰스 파고 등의 예금 점유율은 전체의 33% 수준으로 지난 2007년 중반의 21%에 비해 급증했다.

역사적으로 봐도 이처럼 빠른 시기에 점유율이 늘어난 사례는 보기 어렵다.

이런 변화는 미국 내 최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인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과 미국내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 뮤추얼(와무), 미국내 4위 은행이던 와초비아 등이 무너지면서 대형은행들에 합병된 데서 비롯됐다.

현재 이 3대 은행의 주택모기지 분야 점유율은 1분기에 57%로, 2008년의 28%에 비하면 배 이상 늘어났다.

이 3개 은행은 2008년과 2009년에 연방 정부로부터 950억 달러의 지원을 받았으며 이후에 영업이 정상화되면서 이를 모두 상환했다.

씨티그룹까지 합해 이 4개 은행의 자산은 3월 말을 기준으로 7조7천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2007년 말에 비해 56% 늘어난 것으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46개 대형 은행의 자산을 합친 것에 비해 배나 많다.

대형은행들은 더 많은 지점과 현금입출금기(ATM), 무료 온라인 결제시스템 등 첨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을 공략하는데 유리하다.

모기지를 비롯한 대출금리도 낮은 편이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마크 호건 이사는 "(대형은행과 거래하는 것이) 결국에는 소비자나 기업들에도 이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시장이 일부 은행에 집중될 경우 고객의 선택범위가 좁아지는데다 일부 담당자의 실수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정부 당국의 정책수단도 제한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불러올 수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주종국 특파원 sat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