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이 주식 480만주(시가 300억원)를 담보로 제공했다가 돌려받지 못한 일이 한 주가조작 사건 재판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

이 사건은 금호석유화학이 구조조정 후유증으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2001년 시작됐다. 긴급자금이 필요했던 금호석유화학은 박모씨가 대표로 있던 ILO어음중개회사를 통해 어음 44억원을 할인받고 50억원어치의 사모사채를 발행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융통했다. 금호는 이 과정에서 자사주 150만주와 계열사 주식 330만주 등 480만주를 담보로 맡겼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담보로 맡긴 물건을 함부로 처분하면 횡령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박씨는 주식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담보주식을 다시 제2금융권에 담보로 맡겼다. 박씨는 이 돈으로 코스닥상장 기업 3곳의 주가를 조작했다. 그러나 박씨는 미국에서 터진 9 · 11 테러 사건으로 큰 손해를 봤고 주식도 몽땅 날렸다.

지난 6일 서울고등법원은 횡령죄와 증권거래법(주가조작) 위반 등으로 기소된 박모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횡령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금호석유화학의 잘못을 더 꾸짖었다. 재판부는 보통 기업들이 대량의 주식을 담보로 제공할 경우 '제3자 처분금지 특약'을 맺는데 금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금호석유화학은 특약 없이 담보를 제공한 데다 증권예탁결제원의 증서도 아닌 현물 주식을 박씨에게 넘겼기 때문에 박씨의 담보 주식 처분을 허락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480만주를 담보로 쓴 박씨는 무죄가 됐고 금호석유화학은 이리저리 팔려나간 주식을 회수하느라 큰 손해를 입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