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만 하이키한의원 원장은 본래 여성의 자궁질환이나 생리불순 치료분야 전문 한의사였다. 이런 그가 성장클리닉을 운영하게 된 것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 원장에게는 첫돌을 앞둔 둘째가 있었는데 아이가 키가 너무 작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둘째에게 도움이 될 안전하고 해가 없는 성장치료의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비슷한 처지의 또래 아이가 한의원을 찾아올 때마다 해결 욕구는 강해졌다.

한약으로 발육을 촉진하는 방법을 모색하다 동의보감에 나온 약재를 나름대로 엄선해 둘째에게 먹여보니 1년에 16㎝나 컸다. 다른 또래 아이들에게 먹여봐도 공통적으로 좋은 효과가 나왔다.

어린이 성장 전문 한의원인 하이키한의원 네트워크는 이렇게 시작됐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강남본원을 시작으로 지난 3월 부산점이 부산시청점과 부산해운대점으로 확대 오픈하면서 총 12개의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개인적인 차원의 임상경험을 과학적으로 검증해 확산시킨 게 그의 성공 비결이다.

그는 과연 한약으로 키를 크게 할 수 있는지 치료효과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세 차례에 걸쳐 동물실험을 했다. 2001년부터 한국식품연구원과 공동연구를 진행,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키를 자라게 하는 신물질 'K1-180'을 발견했다. 20가지 이상의 처방을 비교 연구해 2005년 마침내 성장에 가장 효과적인 처방을 찾을 수 있었다. K1-180은 동의보감 약재 중 발육부진에 사용하는 가시오가피,천마 외에 17종의 천연 생약에서 추출한 것으로 한국 사람의 평균키가 180㎝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박 원장은 2006년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실험생물학회연합(FASEB) 학술대회에서 K1-180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신물질을 쥐에게 투여하면 혈중 성장호르몬을 가늠케 하는'IGF-1(인슐린유사 성장인자-1)'의 농도를 20%,뼈가 자라는 데 필요한 단백질인 IGFBP3를 11%,뼈의 활성화를 나타내는 ALP(alkaline phosphatase:염기성 인산분해효소)의 활성도를 15%씩 각각 증가시킬 수 있어 실질적으로 키가 크는 데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IGF-1은 성장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세포의 증식과 분화,지방대사 등에 관여해 성장을 유도하는 물질이다. IGFBP3 역시 간과 여러 조직에서 합성되는데 성장호르몬 분비를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물질이다.

또 복용군은 대조군보다 체중이 11.4%,대퇴골 무게가 12% 늘었고,길이도 4% 증가했다. 이런 연구결과가 인정돼 2007년 1월에는 K1-180이 성장촉진제로 특허를 획득했고 이어 성장촉진 효과를 나타내는 식품으로도 특허를 받았다. 현재 하이키성장클리닉 네트워크에서는 한국식품연구원과 공동으로 연구한 성장촉진 신물질 K1-180을 기초로 체질과 몸 상태에 맞게 생약재를 가감 처방하는 방식으로 성장을 유도하는 치료를 하고 있다.

박 원장은 2004년부터 한의원을 찾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포착했다. 아직 어린데 가슴이 나오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춘기가 너무 빨리 시작돼 여아 8세 이전,남아 9세 이전에 성호르몬이 분비되는 성조숙증이었다.

또래보다 성적 발달이 2년 빨리 나타나는 현상으로 여아에서의 발생률이 남아보다 8~10배 정도 높다.

성조숙증이 나타나면 급성장기를 거치기 때문에 키가 잘 크는 것 같아서 부모들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신체 변화가 일찍 오는 만큼 성장판이 일찍 닫혀버려 성인이 된 후 '최종 키'는 정상적으로 사춘기를 거친 아이의 '평균 키'보다 오히려 작아질 수도 있다. 사춘기가 1년 빨리 시작되면 최종 키가 평균 5㎝ 정도 작아진다는 조사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박 원장은 한의학적 관점에서 성조숙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다. 전통적으로 율무가 비만 치료에 많이 사용된다는 것에 착안해 역발상을 해봤다. 성인비만을 율무를 비롯한 어혈(나쁜 기운의 피가 정체된 것) 개선 약재를 병행해 치료하면 성호르몬 수치가 낮아지던 경험을 활용했다. 실제 어혈 관련 성인질환을 앓는 50대 남성에게 유사한 처방을 했다가 환자로부터 정력이 감퇴됐다는 항의를 받았던 사례도 있었다.

율무의 이 같은 부작용을 역이용해 성조숙증 어린이에게 처방한 후 혈액검사를 해보니 과연 성호르몬치가 떨어졌다. 2007년 6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성조숙증으로 진단을 받은 여아 317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율무와 강황,포황 외 19가지 천연생약으로 구성된 감비성장탕을 투여했더니 소아비만이 개선되면서 여성호르몬의 증가가 억제돼 성조숙증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기간은 평균 10개월이었다.

여성호르몬 E₂(Estradiol)의 혈중 농도는 21.79pg/㎖에서 24.65pg/㎖로 크게 증가하지 않고 현상을 유지했다. 난소의 발육과 배란을 담당하는 난포자극호르몬(FSH) 역시 3.68mIU/㎖에서 4.29mIU/㎖로 0.61mIU/㎖만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 사이 키는 연평균 7.2㎝나 자랐다. 또 성장호르몬과 연관 있는 IGF-1은 377.6ng/㎖에서 455.2ng/㎖로 20.5% 증가했고,뼈 활성인자인 ALP도 11%가량 늘었다. 비만도는 평균 105.2%였는데 치료 후 95.3%로 감소됐고 뼈 나이 역시 평균 5개월 정도 젊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박 원장은 율무 인진쑥 외 19종의 한약재로 구성된 조경성장탕을 개발,초경을 지연시키고 키는 더 크게 하는 효과를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키가 작으면서 비만한 아이들에게는 감비성장탕,키가 잘 자라긴 하지만 성징이 조기에 나타나고 성호르몬 농도가 높은 아이들에게는 조경성장탕을 처방하는 나름의 이론을 정립했다.

박 원장은 "요즘 성조숙증 어린이에게 '루프린'이라는 성호르몬 분비 차단 호르몬제를 많이 투여하고 있다"며 "초경을 늦추기는 하지만 어린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조기폐경이나 난소 질환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으며,주사를 맞는 동안 골다공증이 유발돼 키는 덜 자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기 성숙을 예방할 목적으로 루프린 주사제를 맞히는 것은 올바른 치료법이 아니다"며 "한방으로도 어느 정도 성조숙증을 잡을 수 있는 만큼 루프린 남용은 억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