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참 무서운 것이다. 피를 섞고 살을 맞대며 살아온 형제간에도 서로 손해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게 만드는 게 바로 돈이다. 우애를 자랑하던 형제들이 금전 다툼 후 평생 등을 돌리고 사는 경우도 흔하다.

유럽국들 사이에 돈 문제가 복잡하게 얽혔다. 1100억유로의 긴급 구제금융을 받게 된 그리스를 비롯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남유럽국가들이 재정 위기에 처한 게 원인이다. 들어오는 수입은 별로 없는데 돈을 펑펑 쓰며 심각한 적자 가계부를 만든 나라들이다. 체력에 비해 살이 과도해 몸을 추스르기 힘든 비만증 환자다.

그런데 이들을 돕기 위해 독일 프랑스 등 건전하게 살림을 꾸려온 나라들이 생돈을 내놓는 처지가 됐다. 자칫하면 떼일지도 모른다. 돈을 주는 입장에선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인들의 연금이 재직 때 임금의 95%에 이르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독일 프랑스 등은 이 비율이 30~50% 수준에 그친다. 게다가 그리스는 공공부문이 전체 취업자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운용이 방만하고 탈세와 부패도 만연한 모럴해저드(도덕불감증)의 경연장이다.

그런데도 유럽국들은 결국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데 동의했다. 그리스의 국가부도가 현실화될 경우 유로화의 지위가 흔들리면서 그 피해가 유로존 전체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독일 프랑스 은행 등이 보유한 채권이 휴지조각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식이다.

문제는 지원해야 할 나라가 그리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이른바 PIGS국가들 또한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00% 선을 오르내리고 재정적자도 10% 선을 넘나든다. 살림살이를 감안하면 대외채무를 제때 상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7500억유로의 안정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국가부도를 막고 유로화 가치도 지켜내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 구상이 순탄하게 실현될 수 있을지는 낙관을 불허한다. 가뜩이나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나라들이 선뜻 거금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부터가 문제다. 재정이 건전한 나라 국민들의 경우는 기금 조성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큰 틀의 합의는 이뤄졌지만 실제 자금을 출연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설령 자금이 예정대로 모아져도 안정기금이 꼭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당장의 부도만 모면하게 할 뿐 문제를 연장시키는 데 불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히려 모럴해저드만 더 조장할 소지도 다분하다. 국가부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 세금 인상,복지 축소 같은 긴축정책에 반발하는 여론이 급격히 확산될 수 있어서다.

물론 유럽국들이 재정적자 축소 노력을 다짐하고 있기는 하다.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이 공무원 임금 및 연금 삭감,세금 인상,공공 지출 억제 계획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런 계획은 아마 1~2년 정도는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국 경제는 일시적 노력으로 정상화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허리띠 조이기를 장기간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려스런 것은 국민들이 고통을 장기간 견디는 인내심을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긴축안에 반발해 연일 과격시위가 이어지고 사망사태까지 빚어진 그리스나, 노동계가 총파업을 선언한 스페인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안정기금은 그런 세력에 핑곗거리를 제공하며 모럴해저드를 전염시키는 주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모럴해저드를 차단할 확실한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필요하면 같은 화폐를 쓰며 형제처럼 지내온 나라를 축출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유로존의 미래가 거기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