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 "실패했을 때에도 인내할 줄 아는 게 진짜 연기의 비결"
취업전선에 뛰어든 여자와 매맞고 다니는 삼류 건달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20일 개봉 · 김광식 감독)의 시사회 반응이 뜨겁다.

두 남녀가 가까워지는 과정이 우스우면서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다. 국내 상업영화 주연급으로는 최연장자 축인 박중훈(44)이 타이틀롤을 맡았다.

1986년 '깜보'로 데뷔한 그는 25년간 40편에 출연했다.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와 만나 연기와 인생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내 깡패같은 애인'은 영화가 지향하는 두 가지 요소,재미와 의미를 갖췄습니다. 소위 '88만원 세대'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낸 거죠.깡패가 나오지만 깡패 영화는 아닙니다. '삼류 루저 깡패'로 대변되는 주변인과 아웃사이더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극 중에선 '깡'없는 깡패와 '깡'만 센 여자가 반지하 이웃 방에 살면서 날마다 티격태격 싸운다.

깡패는 여자에게 함께 먹은 라면 값조차 더치페이시킬 정도로 쩨쩨한 사내.그러나 그녀의 눈물겨운 구직 노력을 보면서 마음을 서서히 연다.

지난해 흥행영화 '해운대'에서 생애 처음 조역으로 밀려났던 박중훈이 주연으로 복귀한 배역이다.

"깡패 역은 주연이니까,크기와 깊이가 모두 있는 배역이라 할 수 있죠.그런데 '해운대'에 출연하면서 깊이가 있는 배역이라면 크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배우 생활을 확장하기 위해서였죠.진정 큰 배우라면 작은 역할도 크게 보이도록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미국 등에 비해 한국 배우의 수명이 짧은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문화 선진국에서는 구매 연령층이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10~20대가 티켓파워를 쥐고 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제가) 최연장자가 된 지 오래예요. 어디까지 (내가) 갈 수 있을지 계속 나아갈 작정입니다. 관객 연령층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죠."

그는 자신이 (주연으로) 장수하는 비결을 '인내'라고 압축했다.

"실패했을 때 인내할 줄 아는 게 중요한 덕목입니다. 누구나 파도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을 겪는데 내리막에서 안달하면 오래 갈 수 없어요. 저는 실패에 의연했던 편입니다. 스무살에 데뷔할 때 40편에 출연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기적이죠."

세월이 흐를수록 연기는 쉬워졌을까. 답변은 의외였다.

"연기력이란 신인도 습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과 극 중의 모습은 뗄 수 없는 관계죠.배우의 일상 모습과 매력이 화면에 그대로 묻어나오는 겁니다. 배우의 연기력이 날로 좋아진다면 삶도 순탄하다는 의미죠."

이는 문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글에는 작가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행복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내가 행복하면 연기를 통해 행복한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거든요. 깡패 역을 하더라도 어떤 이는 잔혹해 보이지만 어떤 이는 그렇지 않잖아요. 제 자신이 행복해지자는 게 배우로서 목표입니다. 자연인과 배우의 목표가 동일한 셈이죠."

그는 가을께 개봉하는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에서 23년 만에 강수연과 공동 주연을 맡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