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은 '진실 말하기(truth telling)'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격은 소비자들의 가치평가를 반영해야 하고,금리는 기업가들이 시기별로 자본을 할당하는 데 믿을만한 가이드가 돼야 한다. 또 기업의 회계는 사업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진실 말하기'보다 '거짓말쟁이들의 경제(economy of liars)'가 돼 가고 있다. 원인은 분명하다.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때문이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시대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은 고전적 자유주의를 '무정부 상태와 구(舊)시대적 억압이 혼재된 상태'라고 비판적으로 표현했다. 지금의 '자유지상주의자'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주의자들과 맞닿아 있는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의무가 ①국방 ②폭력과 사기로부터의 국민과 국민 재산 보호 ③시장이 제공할 수 없는 공공재의 제공으로 제한돼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개념은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헌법에 담겨 있다.

그런데 현대적 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역할 목록을 상당히 늘려놨다. 전체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 정치운동 가운데 어느 하나 이를 줄인 경우가 없다.

시민들을 국내 · 외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듯이,시민들을 사기(詐欺)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정부의 주된 역할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기본적인 기능 수행에 비참할 정도로 실패해 왔다.

왜일까. 금융회사를 규제하는 당국이 사기를 막기 위한 법과 규정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나드 매도프 사기사건이 대표적 사례이며,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실패한 규제당국의 전형이다. 사기는 적발이 어렵다. 그러나 매도프 건(件)은 적발이 어렵지도 않았다. SEC는 눈앞에 놓인 증거조차 무시했다. 또한 은행 규제당국은 '거짓말쟁이 대출'이라고 불릴만한 모기지대출의 남발을 그냥 놔뒀다.

리먼 브러더스는 부채비율을 속이기 위해 '리포 105'란 교묘한 방법을 썼다. 리포,즉 '환매조건부채권매매(RP)'는 채권 등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방식이다. 그런데 리먼은 회계규정을 교묘히 이용해 이 거래를 '자산매각'으로 처리,부채가 실제보다 적게 보이도록 했다. 규제당국이 과연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골드만삭스는 최근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에게 이익이 되도록 다른 많은 고객들을 속였다는 혐의로 SEC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했다.

법규와 규정을 늘리면 소비자와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지적(知的) 실패 가운데 하나다. 고정된 규칙은 적용 시 회피 또는 조작될 수 있다.

재무회계는 어떤 규정이 빠져나갈 방법을 허용하더라도,기업은 실제 상황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의무를 지닌다는 전통적 원칙에 의해 통제돼야 한다. 또한 금융회사들은 고객보호 의무를 지켜야 한다.

'공공선택이론'은 규제당국자들이 규제받는 산업의 볼모가 되기 때문에 규제가 실패한다고 본다. 규제당국은 그들이 보호할 책임이 있는 공공대중들보다 규제대상과의 이해관계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2008년 잭슨홀에서 열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례 심포지엄에서 경제학자 윌럼 뷰이터는 이를 '인지 포획(cognitive capture)'이라고 지칭했다.

업계를 감독하는 의회 위원회는 정치 기부금의 유혹과 로비스트들의 간청,업계에 생계가 달려 있는 전문가들의 달콤한 말에 무너진다. 업계와 정부의 이해관계가 서로 엮이게 되고 규제가 이들의 이해관계를 묶어주는 수단이 된다. 이런 시스템은 '자유시장'이 아니라 '정실 자본주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레드릭 하이에크는 가격체계를 정보 전달 메커니즘으로 표현했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상호작용이 재화와 서비스의 상대적인 가치를 반영하는 가격을 형성한다. 보조금은 이런 가격을 왜곡하고 (소비자의 선호도와 생산자의 기회비용 측면에서) 잘못된 자원 배분을 유도한다. 하이에크의 스승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공산주의가 가격에 의존해 자원을 배분하지 않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많고 다른 사람한테는 너무 적은' 잘못된 방식으로 재화가 생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옳다는 것이 입증됐다.

요즘 미국은 정직한 가격에 의존하는 체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연방정부가 주택금융의 90%를 통제한다. 주택 소유를 장려하는 정책은 오히려 늘어났다. FRB의 저금리 정책은 자본의 잘못된 배분을 이끌고 있다. 왜곡된 가격과 금리는 더이상 재화의 상대적인 중요성에 대한 정확한 지표가 되지 못한다. 정실 자본주의에선 보호받는 회사나 산업이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갖게 된다. 정치적으로 선호되는 사업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구제금융을 투입한다. 이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초래하고,미래에 더 많은 구제금융을 필요하게 만든다.

경제 자유를 회복하고 생산적인 자유시장을 되찾으려면 시장에 '진실 말하기'를 되살려야 한다. 이는 인위적인 저금리를 포함해 가격을 왜곡하는 '보조금'의 폐지를 뜻한다. 어느 누구도 정실 자본주의를 선호한다고 말하진 않지만,규제 확대는 결국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규제완화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만트라(mantra · 주문)가 아니라 정실 자본주의를 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제럴드 P.오드리스콜 JR.카토연구소 수석연구원(전 댈러스 연방은행 부총재)
/정리=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