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환영 오찬에 쓰인 와인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환영 오찬에서 양국 정상을 위해 사용된 와인은 캘리포니아산(産)이었다. 1976년 프랑스 파리 시음회에서 전통의 프랑스 와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제품이다. '파리의 심판'으로 알려진 이 시음회는 미국 와인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와인의 세계에서 변두리에 머물던 미국산 와인이 비교적 단기간에 유럽산 명품 와인을 압도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캘리포니아의 나파 · 소노마 지역에 형성된 와인산업 클러스터(집적단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나파 · 소노마에 자리잡은 와이너리(포도주 양조장)의 경영자들은 19세기 말부터 와인 협회를 설립해 상호 교류함으로써 양조 기술에 관한 학습과 시너지 효과를 추구했다. 와인협회는 정부 지원금을 받아 양조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박람회를 열어 와인산업을 홍보하고 정부에 와인 육성책을 건의하는 역할도 맡았다. 캘리포니아대와 스탠퍼드대는 포도 재배 및 양조에 관련된 실용 교육과정을 개설해 와인 업체를 지원했다. 정부도 상표(labelling) 제도를 시행해 업체간 질서를 유지하고 주립대를 통해 와인 연구를 지원했다.

이처럼 캘리포니아 와인산업의 성공은 개인 협회 대학 정부가 차량으로 2시간 이내 거리,즉 우리나라의 광역경제권과 유사한 면적 내에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협력한 결과다. 캘리포니아 와인산업은 클러스터를 통해 농업 제조업 관광 교육 과학기술 등 1,2,3차산업이 융합된 '6차산업'으로 변신하면서 경쟁력을 높였다.

우리나라는 지난 5년간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연구 · 개발(R&D) 중심의 클러스터 사업을 실시하면서 유익한 학습 기간을 거쳤다. 사업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클러스터 사업에 참여한 산업단지의 생산은 그동안 55% 증가했고 수출은 60%,고용은 10% 확대되는 성과를 거뒀다. 참여기업의 연계협력 건수는 150%,R&D 투자는 37% 늘었다.

그러나 클러스터 사업을 개별 산업단지 중심으로 추진하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는 기업과 대학,연구소가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힘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 클러스터 사업을 통해 산업 현장의 애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돼도 이를 다른 지역까지 확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4월부터 수도권을 시작으로 동남권 충청권 강원권 대경권 호남권 순으로 '광역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 클러스터 사업의 대상지역을 개별 산업단지에서 광역경제권으로 확대하고 지원대상 산업단지를 12개에서 193개로 늘릴 계획이다. 광역경제권에 속한 기업 대학 연구소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사업 성과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의 클러스터 사업은 올해로 6년째에 접어들었다. 지식경제부의 광역 클러스터 사업은 창조와 혁신의 선순환을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민간 주도의 자생적 클러스터가 형성될 수 있는 생태계를 지역에 구축하고 해외 클러스터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다양한 성공 사례를 발굴해야 한다.

지경부는 지난 3월부터 R&D 혁신 방안을 추진 중이다. 클러스터 사업이 세계적인 중견기업을 키워내는 요람이 되는 동시에 R&D 혁신을 선도할 수 있도록 산 · 학 · 연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은 캘리포니아 와인산업 클러스터와 같은 '스타 클러스터'의 형성에는 장기적인 안목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에 지금처럼 성공적인 클러스터 모델이 정착되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음을 기억하자.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