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업을 둘러싸고 '동지적' 관계에서 '적대적' 관계로 틀어진 미국 애플과 구글이 모바일 칩 사업에서도 '한판 대결'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구글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반도체 칩 설계업체인 '애그니럭스' 를 M&A(기업 인수합병)키로 한데 이어 애플이 27일 또 다른 반도체 칩 설계업체인 '인트린시티'의 인수를 공식 확인한 때문이다.

두 회사가 인수한 회사들은 모바일 칩 분야에서 앞선 설계 기술력을 확보한 것을 알려지고 있어 차후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의 치열한 개발 경쟁을 예고하는 대목이라는 분석이다.

애플측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의 인수보도를 공식 확인한 인트린시티의 경우 태블릿PC '아이패드'의 두뇌인 CPU(중앙처리장치)에 해당하는 A4칩의 핵심적인 기술을 가진 업체로 꼽힌다. 이 회사는 A4칩에서 빠른 동작 속도와 저전력 특성을 갖게 만드는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동작 속도는 단말기가 얼마나 빠르게 구동될 수 있는 가 하는 성능 개선과 연결되고, 저전력 기술은 배터리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애플과 구글이 인수한 회사들의 경우 삼성전자와 일부 관련성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세 회사의 비즈니스 전개방향 또한 주목받고 있다.

애플·구글, 칩 설계업체 인수로 모바일 기기 성능·배터리 수명↑

애플과 구글의 이같은 반도체 칩 회사 인수 경쟁의 역사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공은 애플이 했다. 지난 2008년 반도체 설계회사 'PA세미'를 인수한 것.

애플은 자사의 운영체제(OS)가 모바일 기기에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최적화시키려면 기기에 들어갈 독자칩 개발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칩 설계 능력을 가진 PA세미와 손을 잡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애플의 독자적인 'A4칩'이다.

하지만 양사의 협력관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버렸다. PA세미의 핵심 인력이 대거 회사를 빠져나가 '애그니럭스'라는 신생회사를 차렸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아이패드용 A4칩의 핵심 개발자인 마크 헤이터도 포함돼 있었다.

애플 입장에서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같은 애그니럭스를 스마트폰 시장에서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른 구글이 최근 전격 인수하는 사태까지 발생되자 아이패드용 A4칩 개발을 위해 인트린시티가 절실하게 필요해진 셈이다.

구글은 태블릿과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자사의 운영체제가 쉽고 빠르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전용 칩을 개발하기 위해 애그니럭스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자사 OS가 각종 모바일 기기에서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동시에 기기의 배터리 성능 또한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애플과 구글의 이 같은 칩 회사 인수 경쟁에 '예기치 않게' 영향권에 든 업체가 생겼다. 바로 삼성전자다. 삼성은 애플이 인수한 인트린시티와 함께 지난해 저전력 고성능 칩을 공동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ARM사의 코텍스(Cortex)TM-A8을 기반으로 자사의 최첨단 45 나노 저전력 반도체 공정 기술과 독자 회로 설계 및 인트린시티의 회로 설계 기술 패스트14(Fast 14)를 접목해 업계 최고 속도인1㎓의 AP를 개발했다.

삼성전자는 이 과정에서 인트린시티가 맡은 역할을 자세히 밝히진 않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인트린시티가 삼성 측에서 부족한 칩 설계 능력을 일부 보완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자사의 독자적인 OS를 적용한 바다폰 등 스마트폰에 직접 개발한 AP를 적용해 출시할 예정이다. 고성능과 저전력 기술을 확보한데다 애플도 독자칩 개발로 더 이상 과거처럼 삼성 AP를 쓰지 않게 된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인트린시티를 인수하자 삼성전자는 또 다른 반도체 설계 업체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트린시티가 독자회사로 있었을 때와 애플이 인수한 뒤는 상황이 많이 다를 것”이라며 “삼성전자는 또 다른 협력 회사를 찾거나 독자적으로 설계 기술 능력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플이나 삼성이나 어차피 세계 모바일 시장에서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견제심리가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