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올해 국내에서 새로 임관된 여성 검사 비율은 55.6%로 전세계적으로 법조계의 여풍(女風)이 거세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아직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남녀 차별이 심한 사우디에서는 여성 변호사들이 여전히 법정에 서지 못하고 있다.남성 법관들이 ‘여성은 공공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일부 판사들은 여성의 목소리는 사악하게 들린다는 이유로 이들의 법정 진술을 거부하기 때문이다.차도르와 히잡을 쓰지 않았다며 법정에서 내쫓긴 이들도 많다.심지어 사우디에서는 여성 법조인들이 공식적으로 ‘변호사’라는 직업명을 쓰는 것조차 금지돼 있다.

지난 2004년 사우디 정부측은 여성들의 법조계 참여를 독려하겠다는 취지로 관련 컨퍼런스를 개최했고 그 결과 대학 3곳에서 여성들의 법대 입학을 허가했다.여태까지 1500여명의 여성들이 법학과를 졸업했으나 이들 대다수는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로펌들이 여성 법학도를 고용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모하메드 알 이사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여성들도 곧 공식적으로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으나 이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여성 변호사인 수아드 알 사마리는 “정부 당국에서 법관들에게 여성을 ‘죄인’으로 보지 않도록 인식을 바꾸는 교육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사우디의 사법부는 보수주의가 가장 굳건한 곳이다.이슬람 경전에 근거한 법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여성 차별 인식이 법조항을 관통하고 있다.여성 변호사는 옆에 남성 보호자를 대동하지 않으면 업무를 볼 수조차 없으며 법원에서 내려지는 판결 역시 여성에게 극도로 불리하며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다고 FT는 전했다.

법학을 전공하고 있는 여대생 나질라 알 파라지는 “사우디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으나 속도가 매우 느리다”며 “법조계에서 여성 변호사를 영영 받아들이지 않을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