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해외투자가 늘면서 국제투자중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투자중재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벌이는 권리분쟁을 국제중재에 회부하는 제도이다. 주로 투자와 관련된 조약이나 인가,계약 위반 등이 분쟁 대상이다. 예컨대 해외 투자기업이 현지에서 부당하게 사업허가를 취소받거나 무상몰수를 당해 손해를 입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향후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비준되면 국제투자중재가 미국을 상대로도 제기될 수 있어 양국 간 분쟁해결 수단이 될 전망이다.

◆외국기업들 이용 활발

국제투자중재는 1987년 미국 애플 홍콩법인이 스리랑카 정부를 상대로 처음 제기한 이후 외국 기업들이 활발히 이용하고 있다. 분쟁 당사국이 아닌 별도의 중재기관이 판정하기 때문에 공정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중남미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중재 제기가 급증했으며 미국과 캐나다 간에도 다수의 중재 사건이 벌어졌다.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08년 말까지 318건의 국제투자중재 사건이 다뤄졌다. 국제투자중재는 당사국들의 사건을 다른 나라 법정에서 해결하는 방식이다. 투자체결을 할 때 협정에 명시되지 않으면 국제투자중재는 이뤄지지 않는다. 318건의 국제투자중재 사건 가운데 250여건이 양자 간 투자협정(BIT),50여건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근거로 진행됐다.

한국 기업이 현재까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국제투자중재를 제기한 사례는 없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중재팀의 윤병철 변호사는 "한국기업들에는 국제투자중재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며 "외국 진출이 늘고 있고 법무부에서도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는 만큼 앞으로 중재를 이용하는 사례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올해 지자체와 공기업,해외진출 기업들을 대상으로 국제투자중재 등에 대한 교육 및 홍보를 30여회에 걸쳐 진행할 계획이다. 한국과 국제투자중재 내용이 포함된 FTA를 맺은 국가는 칠레 싱가포르 등 4개,BIT를 맺은 국가는 80개 이상이다.

한국은 미국과 FTA 협상이 타결됐고 캐나다 멕시코 등 7개국과 협상 중이어서 국제투자분쟁 대상 국가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과 투자유치국이 직접 중재인 선정

기업들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나 국제상공회의소(ICC),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등 중재기관을 통해 투자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 청구 기업은 투자협정에 정해진 중재기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 등 청구인이 손실을 입은 사건이 벌어진 후 냉각기간을 거쳐 6개월 후부터 청구가 가능하며 3년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제투자중재가 주로 벌어지는 경우는 투자유치국 정부가 외국 기업의 재산을 강제 수용했을 때다. 소유권을 직접 이전하거나 재산을 압류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재산의 이용이나 향유에 간섭하는 '간접 수용'도 분쟁 대상이다.

청구인이 중재기관에 중재를 제기하면 판정부는 통상 청구인과 피청구국이 각각 선택한 중재인과 이들 중재인이 합의해 선택한 의장 등 3명으로 구성된다. 청구인과 피청구국 의견이 일치하면 중재인 1명만으로도 판정부 구성이 가능하다.

중재인의 자격은 통상 중재규칙에서 세부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꼭 법률가일 필요는 없으며 자국민이나 외국인 모두 가능하다. 판정부는 투자계약에서 정한 법에 따라 판정하며,정해지지 않은 경우에는 국제법과 피청구국의 법,판정부가 적절하다고 여기는 법으로 판정한다. 판정은 다수결로 정한다.

◆일종의 계약…강제력 없어

국제투자중재는 일종의 계약으로,한 나라의 법원 판결처럼 결과를 강제할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경제위기 당시 취한 비상조치로 외국 투자자들이 제기한 국제투자중재에서 졌는데도 중재판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이행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재판정이 내려지면 대부분 이행돼 중재판정금이 지급된다"고 말했다.

기업의 승소율도 높은 편이다. UNCTAD에 따르면 2007년 말까지 판정이 내려진 119건 가운데 40건은 투자자가,42건은 투자유치국이 승소했고 37건은 쌍방 합의로 끝났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