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디 포스터,안젤리나 졸리,허수경….'

[2030 섹스& 더 시티] 결혼은 'NO' 아이는 'YES'…골드미스 新가족의 탄생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또는 현재 '비혼모(非婚母)'라는 것이다. '비혼모'란 결혼을 하지 않고,아기를 낳거나 입양해 키우는 여성을 말한다. 이 중에서 남편 없이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여성을 '미스맘'(miss mom)이라고 부른다.

할리우드 지성파 배우 조디 포스터는 1998년과 2001년 인공수정으로 두 아이를 출산했다. 톱스타 안젤리나 졸리는 브래드 피트와 결혼하기 전 캄보디아,베트남 출신의 아이 두 명을 입양해 홀로 키웠다. 국내에서도 2008년 독신인 방송인 허수경씨도 시험관 아기 시술로 예쁜 딸을 출산했다. 허씨는 출산을 앞두고 방송에서 임신 사실을 당당히 공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독신주의자이면서 아이를 키우는 '자발적 비혼모'가 늘고 있다. 이들은 원치 않은 임신으로 아이를 낳은 '미혼모'나 사별 또는 이혼 후 자녀를 혼자 양육하는 '싱글맘'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유명인들이나 가능한 특별한 사례일 뿐"이라며 선을 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비혼모'를 소재로 한 드라마,연극,서적 등이 잇따라 등장하는 것을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결혼'을 기피하는 골드미스들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또 호주제가 폐지되고 자녀가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게 된 사회제도의 변화도 한몫 하고 있다. 왜 이들은 결혼은 원하지 않으면서 아이는 바라는 걸까. '비혼모'에 대한 골드미스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 남편 말고 아이만 갖고 싶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이들은 결혼을 인생의 필수조건으로 보지 않는다.

"행복한 삶을 위해 결혼이 반드시 필요한 건가요?" '비혼모'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임희선씨(40)는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반문했다. "친구들의 결혼생활을 지켜보면서 결혼을 해 지금의 생활보다 어떤 점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한 가지도 꼽을 게 없더라고요. 현재 싱글 생활에 매우 만족해요. 하지만 아기를 너무 좋아해 친구들의 아이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았어요. 결혼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출산 가능성은 갈수록 줄어 들잖아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예쁜 아이를 낳고 싶어요. "

아예 결혼을 기피하는 이도 있다. 독신주의자인 김인정씨(38)는 "어릴 적 엄마가 고부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독신을 결심했다"며 "풋풋한 신혼생활이 끝나고 커져가는 남편과의 갈등,시댁 식구들과의 불편한 관계로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은 친구들을 통해 결심을 더욱 굳혔다"고 말했다. 그는 "갈수록 여성들이 남편은 뒤로 한 채 아이에게만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존재 이유와 행복을 찾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내,며느리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하는 결혼 없이 아이만 키우면서 엄마로서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혼 여성보다는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돌싱' 사이에서 이런 생각이 두드러진다. 고달팠던 결혼생활은 피하고 싶지만 아직 아이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아이는 남편 대신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 결혼으로 맺어져야만 가족?

'비혼모'가 될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 입양이다. 원래 결혼한 사람만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지만 입양을 독려하기 위해 2007년부터 독신자에게도 입양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만 조디 포스터처럼 독신녀가 정자은행에서 우량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 출산하는 것은 국내에선 불가능하다. 2008년 4월 '생식세포 관리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반드시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생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미혼여성이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는 것은 불법이다. 미혼여성이 아이를 출산하고 싶다면 직접 남성과 관계를 맺어 임신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외국기업에 다니는 임지희씨(36)는 직장 동료와 동거하면서 아이를 얻었다. 임씨는 "결혼,양육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아이 아버지도 출산에 동의했다"며 "그러나 몇 년 전 한 달치 양육비를 한번 보내준 이후로는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임씨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삶에 대한 의지가 더욱 강해진다"고 얘기했다. 이는 21세기형 새로운 가족형태로 볼 수 있다. 결혼으로 맺어지는 가족개념의 틀을 깨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독자적인 가족을 꾸려 행복찾기에 나선 신(新)여성들의 모습이다.


▼ '미스맘'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1970년대 후반 창간된 일본 잡지 '크로와상(クロワッサン)'은 미혼모임을 당당하게 선언한 여배우나 작가들의 인터뷰 기사를 많이 소개했다고 한다. 당시 남편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자립 여성의 표상처럼 비쳐졌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나 이들은 세상을 살아가기 정말 힘들다고 고백했고,언론의 부추김으로 미혼모가 된 것을 후회했다. 이를 두고 '크로와상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그 후로 20여년이 흘러 국내에서는 연극 '미스맘'이 상영됐다. 지난해 9~11월 1편 '미스맘의 탄생'이 공연됐고,2편 '미스맘의 홀로서기',3편 '미스맘 그리고 크로와상 증후군'이 차례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 연극은 우리 사회에서 미스맘들의 홀로서기가 얼마나 힘들고,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달리 혈연관계가 중요시되는 한국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미스맘'이 할리우드 스타처럼 당당하게 살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미혼여성은 입양 절차도 일반 가정보다 더욱 까다롭다. 김정숙 홀트아동복지회 사회복지사는 "미혼 여성들이 입양에 대해 상담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지만 입양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5% 미만으로 극히 드물다"고 귀띔했다. 그는 "2명의 상담원을 통해 경제적 조건,최종 학력,사망시 대리 후견인 확보 등에 대해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치면서 본인 스스로 혼자 양육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남성들은 미스맘이 여성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난한다. 두 딸을 둔 김한성씨(41)는 "입양을 통해 아이가 복지시설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게 나을 수는 있지만 여성들이 남편 대신 자신의 노후를 외롭지 않게 보내기 위해 아이를 낳는 것은 자식을 애완동물로 여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나중에 그 아이가 아빠없이 자라면서 겪게 될 문제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가뜩이나 양육비용이 부담스러워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늘고 있는 마당에 홀로 애를 키우겠다는 이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되겠냐는 지적이다. 이처럼 '미스맘'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지만 새로운 가족 개념으로 정착될지 일본처럼 '크로와상 증후군'으로 전락할지 지켜볼 일이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