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 후 입주 때까지 주인을 찾지 못한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분양 후 2~3년이 지나 집이 다 지어졌는 데도 팔리지 않은 이들 '악성 미분양'이 작년 말 기준 5만채를 넘어선 데다 수도권에서조차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최근 수요가 급감한 중대형 주택(전용 85㎡ 초과) 위주로 이 같은 '빈 집'이 갈수록 늘 것으로 예상돼 건설사와 금융회사의 동반부실 우려마저 높아지고 있다.

◆수도권도 준공미분양 급증세

23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공식 통계로만 12만3297채다. 이 가운데 준공 후 미분양은 2005년 말 1만983채에서 지난해 말에는 4.5배 늘어난 5만87채에 달한다.

이들 주택의 평균 분양가를 3억원으로만 잡아도 대략 15조원의 분양대금이 묶여 있는 셈이다.

눈에 띄는 것은 수도권에서조차 준공 후 미분양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1292채였던 수도권 준공후 미분양은 2006년 2576채로 늘었다가 2007년(1347채)과 2008년(1339채)엔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지만 작년 말 3226채로 또 다시 급증했다. 용인(644채) 이천(329채) 남양주(311채) 인천 서구(353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다 보니 전체 미분양에서 준공 후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8년 말 20.8%에서 지난해 말에는 전국 평균 40.6%로 껑충 뛰었다. 수도권 역시 같은 기간 4.9%에서 7.9%로 커졌다.

◆중대형은 2채 중 1채가 '악성'

준공 후 미분양 가운데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는 중대형 아파트 증가세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말 기준 2만4618채로 1년 새 55.5%나 급증했다. 준공 후 미분양에서 중대형이 차지하는 비중도 2채 중 1채꼴인 49.1%에 이를 정도다.

수도권 역시 증가세가 가파르다. 2008년 301채에 불과하던 중대형 준공 후 미분양은 지난해 말 현재 2040채로 1년 새 6.7배로 급증했다. 반면 전용 85㎡ 이하 중소형(1186채)은 같은 기간 14.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대형 주택 분양가를 평균 5억원이라고 가정하면 건설사들이 1조원이 넘는 분양대금을 한 푼도 회수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용인의 경우 준공미분양 중 중대형이 91%(581채)에 이른다.

건설사들이 분양가상한제를 피해 수도권을 중심으로 '밀어내기 분양'에 나섰던 2007~2008년 공급 물량이 올해 대거 입주할 예정이어서 준공미분양,특히 중대형 주택 증가세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중견 주택건설사인 W사의 주택담당 임원은 "중대형 주택이 많이 분양된 경기도 용인만 해도 올해 입주물량 가운데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한 집이 많다"며 "한 번 꺾인 수요가 회복되기 쉽지 않은 데다 분양가마저 주변시세보다 비싸 주인 없는 빈 집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에는 1~2년 전에 냈던 계약금마저 포기하고 해약하겠다는 수요자까지 늘고 있다"고 걱정했다.

◆금융부실로 번지나

준공 후 미분양 급증세가 심각한 것은 건설사들의 자금난뿐만 아니라 은행 등 금융회사까지 악성 대출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분양 당시 이자후불제,중도금 무이자 등을 제공했던 건설사의 자금사정이 악화될 경우 중도금이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의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중소형 주택에 비해 대출액이 많은 중대형 주택의 준공미분양은 건설사와 금융회사에 더 큰 부담이다.

주택건설업계는 중대형 미분양에 대한 수요가 회복될 수 있도록 DTI(총부채상환비율)규제 등을 완화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중대형 아파트는 집을 넓혀가려는 이른바 '갈아타기 수요'가 많은 데 기존 집이 안 팔리다 보니 잔금 낼 돈이 없어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고 있다"며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때만이라도 DTI 규제를 선별 완화해 줘야 건설사 부도,금융부실 등 연쇄파장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