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갈 때마다 드는 고민 중 하나는 회사 식구들에게 줄 선물 장만이다. 접시,담배,화장품 케이스,액세서리,립스틱,향수에서 심지어 여직원을 위한 단체 속옷까지.때마다 선물 레퍼토리는 다양했고 이번에는 뭘 할까가 출장길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어렵게 품목을 정해도 박람회에서 수거한 엄청난 자료에다 현지에서 구입한 수십권의 책,거기다 사원들의 선물까지 챙기려면 귀국길은 항상 어깨가 끊어질 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물로 나눠 준 여행용 화장품 케이스 하나가 어느 사원의 책상 밑에서 굴러다니는 걸 보게 됐다. 아내가 좋아할 텐데 왜 집에 갖다 주지 않았냐고 묻자,겸연쩍게 웃으며 "가져 가야죠"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후에도 그 케이스는 사원의 발 아래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었다. 한번은 여직원이 미국 유학을 가게 됐다. 일요일 발이 부르트도록 백화점을 헤맸다. 옷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그녀의 취향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평소 취향을 알아두지 않은 게 얼마나 후회스럽던지….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내 욕심대로 선물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비싼 화장품 케이스가 아니라 작은 초콜릿 하나라도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그러자면 평소 상대방과 친근하고 진실한 대화를 통해 교감해야 한다.

사회 생활에서는 1차적 관계보다는 2차적 관계가 대부분이다. 구성원 간의 친밀함과 일체감을 바탕으로 하는 1차적 관계와 달리 2차적 관계는 이해관계를 기초로 하며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인위성이 특징이다. 2차적 관계에서는 이해관계의 목적 달성이 중요하므로 관계가 기차 밖 풍경처럼 휙휙 지나간다. 목적이 사라지면 그 자리는 텅비고 허무하기 일쑤다.

그런데 요즘은 사회 생활에서도 1차적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요즘 뜨고 있는 멘토링이야 말로 1차적 관계 형성의 중요한 대표적 개념이다. 개인 간,기업 간에 중시되는 신뢰 역시 경영학적 의미보다는 심리학적,사회학적 의미로 1차적 관계의 특징이 강한 용어다. 현대인들의 생활이 바쁘고 팍팍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공적인 관계에서도 좀 더 친밀한 교감을 나누는 것이 미래형 인맥 관리의 핵심이 아닐까. 관계의 5% 정도는 업무를 벗어나 따뜻한 시선으로 어떤 아빠이고 엄마인지,취미와 꿈은 무엇인지,좋아하는 색과 취향,고치고 싶은 버릇은 없는지 등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영어로 현재,present란 단어에는 선물이란 뜻도 있다. 좋은 선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순간 자체가 선물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명절 선물을 준비하면서 선물하려는 내 욕심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선물받을 상대방에 대해 인간적이고 따뜻한 관심을 기울여 볼 요량이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 okceo@changup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