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1. 직장인 A씨는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경제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향에 가면 인사를 곱게 하는 조카들, 먼저 아는 체하는 고향 어른들 등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만원짜리 한 장이라도 건네려면 적어도 몇 달에 걸쳐 조금씩 혼자만의 비자금을 모은다. 주머니 사정은 허락지 않는데 남자의 체면은 세워야 하는 명절이 싫다.

# 사례2. 결혼 14년 차 직장인 B씨는 매년 명절을 앞두고 아내를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한다. 작전은 최소 보름 전부터 시작된다. 필요하지도 않은 급전을 아내에게 빌려 예상 밖의 이자 10만원을 준다. 자가용으로 회사 모시기부터 전신 오일 마사지까지 명절 전에 아내 기분을 최고로 만들어 준다. 그래야 명절이 편하기 때문이다.

명절을 꺼리는 남편들이 늘고 있다. 남편들은 경제적 부담부터 명절마다 찾아오는 아내의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심리적 불안까지 겪는다. 부인과 시어머니 사이에서 중재하느라 마음고생도 적지 않다. 이런 남편들의 스트레스를 주부들의 명절증후군에 빗대 '남편명절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아내의 스트레스가 곧 남편의 스트레스

최근 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이 서울 및 수도권 거주 성인남녀 821명을 대상으로 명절 차례 준비에 대한 남녀 가사일 분담 비율을 조사한 결과, 2대 8로 나타나 여성의 가사분담도가 월등히 높았다. 또 설날 차례를 지내지 않는 성인남녀 329명에게 그 이유(복수응답)를 물어보니 24.9%는 '차례준비에 여자들만 너무 수고해서'라고 답했다.

이처럼 여성은 명절이면 응당 일꾼으로 변신한다. 귀향길 여독이 채 풀리지도 않았는데 부엌으로 들어가 제수 음식 준비에 뛰어든다. 요즘은 남편들이 많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내 아들 손에 물 묻히는 모습 볼 수 없다는 시어머니 눈초리에 남편을 부엌으로 불러들일 수도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모습을 보는 일부 남편들은 애가 탄다. B씨처럼 제아무리 명절 전에 공을 들여도 아내가 명절 연휴 3~5일 동안 받은 스트레스는 남편의 공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혹시나 아내가 명절이 끝나고 두통, 소화불량, 우울증 같은 명절증후군을 겪기라도 하면 남편들은 곧바로 죄인이 된다.

◇말 못하는 남편들…너희가 내 마음 알아?

명절에는 워낙 아내들의 스트레스가 심하다 보니 남편들은 힘들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한다. 동병상련일까.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9일 A씨(ID:생각)의 이야기가 올라오고 나서 남편들의 곪아 터진 속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A씨는 "사람 노릇에 길든 남자의 명절 증후군,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명절이면)아내, 자식, 부모 모두 내 얼굴만 쳐다보는데 어떡해야 할지, 성묘 빨리 다녀와서 빨리 처가에 가자는 아내의 그 '빨리'란 소리도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이 글을 본 한 누리꾼은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남편)명절증후군은 분명히 있다"며 "돈은 쪼들리는데 귀향길은 운전해 가야지, 마누라 푸념 안 들어주면 나쁜놈 되니 참아야지, 스트레스 하소연도 못한다"고 주장했다.

아고라에 같은 날 글을 올린 B씨(ID:나야나)는 "설날이 다가오면 여러모로 신경 곤두서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중에 주부들이 가장 예민해 지는 시기가 명절"이라며 "(귀향길에 오르기 전에)휴일 출근하는 아내 배웅, 전신 오일 마시지 등으로 아내의 비위를 맞춰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B씨도 아고라에 올린 글에 '명절 앞둔 남편의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달아 놓은 것을 보면 명절증후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아내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남편들의 푸념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자 한 여성 누리꾼은 "아내가 하는 것처럼 똑같이 2박 3일만 해보라"며 "결혼 8년 차인 나도 (여자들이)주는 음식, 술 먹으면서 (남편)명절증후군을 겪어보고 싶다"고 반박했다.

한경닷컴 김은영 기자 mellisa@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