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조각을 한 손으로 들어 전시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 넣었다. 다섯 명의 장정도 못드는 무거운 조각을 보면 짜증스럽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죽은 사람,의식이 없는 사람보다 가볍다. 내가 보여주려는 건 바로 그것,그 가벼움이다. "

망원경이 끝나는 곳에서 현미경이 시작된다고 한다. 더하기와 보태기에 지치면 빼기에 주목하게 되는 걸까. 갖고 또 가져도 행복해지기는커녕 외롭고 헛헛해지기만 하는 삶 끝에 좀더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눈을 돌리게 됐을까.

인체의 모든 군살을 제거한,가늘고 긴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66)의 조각 '걷는 사람Ⅰ'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낙찰가는 6500여만 파운드(약 1200억원).미화 1억432만7006달러로 2004년 뉴욕 소더비에서 팔린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1억416만8000달러) 가격을 뛰어넘었다.

불황 속에 추정 최고치(1800만 파운드)의 세 배를 넘기는 이변을 일으킨 셈이다. 자코메티 조각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건 아니다. 생전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고흐 등과 달리 실존주의 예술의 거장으로 1965년 런던 및 뉴욕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졌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자코메티의 작품은 누구나 한번만 보면 잊지 못할 만큼 독특하다. 형태의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을 만큼 덜어낸 작품은 얼핏 보면 공중에 수직으로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철사처럼 가느다란데도 불구,작품은 묘한 힘을 지닌다.

20~30년대 초현실주의 그룹의 주 멤버로 활약했던 그가 그같은 작품을 내놓은 건 2차 대전 뒤인 1948년.전쟁의 상흔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가벼움에 절망했을까,불의의 사고로 남성성을 잃고 걸음도 부자유스럽게 된 상황에서 삶의 지표를 모색했을까. 겉치레가 없어질 때 남아있게 될 것을 찾으려 애썼다.

그 결과 선명한 의식만 남은 인간,한없이 고독한 가운데 고통과 절망을 뛰어넘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 탄생된 셈이다. 그는 생전에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죽을 때까지 몽파르나스의 초라한 작업실에서 궁핍하게 지내며 정신의 자유를 추구했다. 철사 같은 자코메티 조각의 힘은 바로 이처럼 덜어내고 비워낸 작가의 영혼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