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막을 내린 21세기의 첫 10년에 대한 시각은 양극단으로 갈린다.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9 · 11 테러로 시작해서 대공황 이후 최악으로 평가되는 글로벌 경제 위기로 끝맺었다는 이유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나 뉴스위크 편집장인 파리드 자카리아의 견해는 다르다. BRICs(브라질 · 러시아 · 인도 · 중국)를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들에는 잃은 것이 없었던 시기였다는 평가다. 우리는 어떨까?

한국 경제에 지난 10년은 '얻은 것 못지않게 잃은 것이 많은' 기간이었다. 한편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듯 보였다. 1980년대부터 시작한 정보기술(IT)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결실을 맺었다. 드라마,영화 등 문화 상품이 수출효자 종목으로 등장했다. 대기업들의 약진도 두드러졌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처음으로 소니를 앞질렀고 현대자동차는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의 반열에 올랐다.

정치인들의 자화자찬도 우리나라가 질주를 계속하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개최국이자 아시아,유럽 정상들이 참가하는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개최국이 된 것을 업적으로 내세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UN 사무총장을 배출했을 뿐 아니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를 개최한 것에 자부심을 갖자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G20 회의 개최국이 된 것을 국격이 높아진 증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요 경제 지표는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줬다. 세계 경제에서 우리 경제가 차지하는 위상은 계속 낮아졌다. 세계 10위 경제대국 진입에 실패한 뒤 6년 연속 뒷걸음질쳤다. 2003년 세계 11위였던 GDP(국내총생산)는 이듬해 인도에,2005년에는 브라질에 추월당해 13위가 됐다. 2006년에는 러시아가,2008년에는 호주가 우리를 앞질렀다. 이로 인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 2위였던 한국 경제는 5위로 전락했다.

성장률도 낮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2년 GDP 성장률은 7.2%였다. 하지만 2004년에는 4.6%로,2005년에는 4.0%로 급락했다. 2006년과 2007년에 각각 5.1%와 5.0% 성장을 기록하면서 반등 조짐을 보였던 GDP 성장률은 2008년 다시 2.2%로 떨어졌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주범이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2000년대 들어 4%대로 급락한 뒤 2008년에는 3%대로 추락해 버린 잠재성장률이었다.

이러한 퇴행 기조를 되돌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국제 경제 환경이 험난하다. 하버드대학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 등은 국가 부도로 인한 경제 위기의 장기화를 경고한다. 커다란 내수 시장과 풍부한 자연 자원을 가지고 있는 신흥 개도국들과의 경쟁은 버겁기만 하다. 경제 정책 집행 환경도 척박해졌다. 민주화는 경제의 정치화를 동반했다. 정치인들은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하고 이익단체들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목청을 돋운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어떤 대통령도 누리지 못한 우호적인 정치 환경을 만끽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협조적이다. 종편방송 사업자 선정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개혁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여당 의원들도 고분고분하다. 2012년 총선에서 청와대가 막후 공천권을 휘두를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불필요한 정쟁을 피하고 좋은 조건들을 이용해서 경제 재건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지,먼 훗날 올해 시작된 새로운 10년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던 시기로 기억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지 온 국민이 주목하고 있다.

윤계섭 <서울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