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도 워싱턴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 182명 중 여성은 25명으로 여전히 남성에 비해 한참 적은 숫자이지만 1990년대 후반에만 해도 5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5배나 늘어난 사상 최고 숫자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11일 소개했다.

'남성 클럽'인 워싱턴 외교가의 이같은 '성 전환'의 핵심원인은 국무부 최고위층에 여성의 숫자가 늘어난 데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이름을 따 '힐러리 효과'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모잠비크에서 갓 부임한 아멜리아 마토스 숨바나 대사는 "힐러리 클린턴이 너무나 두드러지기 때문에, 외국의 대통령이 여성 대사를 워싱턴에 보내는 결정을 쉽게 만드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1997년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 된 후 남성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거쳐 2005년 다시 콘돌리자 라이스, 클린턴으로 여성 국무장관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인도의 메에라 샨카르 대사는 "최근 미국 외교의 그림에서 여성들이 워낙 두드러진 점이 외교분야에서 여성의 수용폭을 넓혀주고 있다"고 말했고, 리히텐슈타인의 클라우디아 프리체 대사는 올브라이트-라이스-클린턴의 여성 국무장관 맥이 "세계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고 공감했다.

주미 대사를 여성으로 임명하는 것이 그 나라의 현대화와 대미 관계의 척도로 간주되는 면도 있다고 일부 미국 외교관들은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외국 여성대사 25명 중 11명이 아프리카 국가에서 부임했고, 4명은 카리브해 연안국 출신이며, 나머지는 바레인,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키르기스스탄, 싱가포르, 오만, 콜롬비아, 인도, 리히텐슈타인 대사이다.

면적 20㎢에 인구 1만4천명인 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도 여성 대사를 보냈다.

오만의 후나이나 술탄 알 무그하이리 대사는 아랍권 최초의 여성 주미대사이고, 샨카르 대사는 인도에서 50여년만에 나온 여성 대사이며, 콜럼비아의 카롤리나 바르코 대사는 남미 유일의 여성 주미대사이다.

1996년 부임해 여성 대사 중 최장수 기록을 가진 싱가포르의 헹 치 찬 대사는 처음엔 '찬 대사'로 예약한 자리를 찾으면 당연히 남성일 것으로 생각,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아직도 리셉션장에서 여성 대사 옆에 있는 남성을 보고 "미스터 앰배서더"라고 인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내가 대사라고 말해줘도 사람들은 대사 배우자라고 생각한다"고 샨카르 대사는 말했다.

미국도 지금은 새로 충원하는 외교관의 절반 이상과 재외공관장의 30%를 여성이 차지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 외교관이 결혼하면 국무부를 떠나야 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신문은 기혼 여성은 외교업무를 맡을 수 없고 육아와 가사를 돌봐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아직 세계의 많은 곳에 남아있지만, 미국의 국무부가 '백인, 남성, 예일대'를 벗어남에 따라 세계 다른 곳의 외교관들의 성분도 다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전 존슨 미외교관협회(AFSA) 회장은 여성 외교관의 증가 현상이 공교롭게도 외교에서 국방으로의 중심 이동 현상과 함께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외교의 상대적 여성화가 권력과 영향력의 중심으로서 외교의 쇠퇴를 시사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그래도 여성의 외교 진출을 환영했다.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것이다.

캐시 틴슬레이 조지타운대 여성리더십연구소장은 어떤 조직에서든 정책결정자들이 동질적이면 "실책을 확대"할 수 있는 만큼 최고위층을 남녀의 특정 성이 독점하지 않는 게 더 좋은 결정을 낳는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외교장관 출신인 바르코 대사는 중요한 것은 능력과 준비이지 성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여러 여성 대사들은 여성인 점으로 인해 남성 카운터파트와 논의 때 남성과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빈곤과 여성교육의 부족 등과 같은 이슈들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여러 미국 외교관들은 여성 국무장관들이 부임하면서 해외주재 미국 대사관들이 여성권리 침해문제에 대한 정보 수집을 강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여성들이 초점을 맞추는 문제들이 "연성(소프트) 문제들"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빈곤, 차별, 교육과 보건은 종종 가장 어려운 문제들"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의 여성 대사들은 여성으로서 친밀감으로 뭉쳐 만나기 쉽지 않은 상원의원과 모임을 끌어내기도 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장점도 있으며, 남녀 좌석 배치 관습에 따라 여성이기 때문에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바료 옆자리를 배정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편 남성 대사들은 대체로 부인을 동반하지만, 여성 대사들은 홀로 부임하는 경우가 많아 이 신문이 인터뷰한 여성 대사 8명 중 이혼한 4명을 제외한 나머지 4명 모두 남편이 모국에서 일 때문에 부인과 동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통적으로 대사 부인들은 주재국에서 대사 직무의 핵심 부분 중 하나인 접대에서 큰 역할을 하는데 워싱턴의 여러 여성 대사들은 "우리도 부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