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우박을…" "12월25일이 무슨 날입니까? 금요일입니다. " "저도 카드 한 장을 받았어요. 사랑하는 나미야,메리 크리스마스.행복한 크리스마스 되길 바랄게.나미가 나미에게."

지난 20일 첫 방송부터 화제를 모은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 '솔로천국,커플지옥'의 내용이다. 옆구리가 허전한 솔로들은 이 코너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반응이다.

솔로들은 연중 이맘 때가 가장 두렵고,심란하다. 거리 곳곳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럴송에 괜히 짜증이 난다. '올해는 절대 혼자 보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건만,눈 깜짝할 사이 또 12월의 끝자락이다. 하지만 평소 주말마다 시체놀이를 즐기던 솔로들도 12월만은 온갖 스케줄로 빼곡하다. 이 추운 겨울 옆구리 허전한 골드미스들의 연말나기 비법을 들여다봤다.

◆그들만의 리그

지난 22일 서울 장충동의 한 레지던스 호텔에 9명의 싱글 여성이 모였다. 거실 한쪽 식탁에 훈제 칠면조,시폰 케이크,카나페,과일,샴페인 등 파티 음식이 그럴싸하게 차려졌다. 은은한 촛불 조명 속에 캐럴송도 흘렀다. 홍보대행사 PRMC 대표 오유경씨(33)가 마련한 파티(사진)다. 샴페인 잔을 들고 머리엔 빨간 루돌프 머리띠를 꽂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냈다.

오씨는 "지인들을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다진다"며 "예전엔 분위기 좋은 바나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했지만 요즘은 집이나 사무실을 이렇게 꾸며 소규모 파티를 여는 문화가 대세"라고 설명했다. "연말이다 보니 외로운 솔로들끼리 재미있게 보내자는 의미도 있죠.오늘 초대장 보셨나요? '품절녀가 되기 위한 뷰티풀 나이트'란 테마인데, 나름 재미있지 않나요?"

9명의 여성이 모였지만 모두 잘 아는 사이는 아니다. '친구의 친구'를 함께 초대해 새로 친분을 맺기도 한다. 화장품 업체 홍보마케터 이현지씨(28)는 남들보다 한 시즌을 앞서 살아야 하는 직업이어서 매년 바쁘게 그냥 지나가 정작 자신만의 연말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는 "가까운 친구들은 남자친구나 가족들과 보내므로 만나기 힘들어 이렇게 지인들의 하우스 파티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들 멤버 사이엔 공통분모가 있어 얘기도 잘 통하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작가,패션지 기자,브랜드 홍보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모여 있죠.이런 자리를 통해 새로운 만남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

◆속성 '연말용 애인' 만들기

연말이 다가오면 소개팅 시장도 활기를 띤다. 솔로들에겐 그 어느 때보다 소개팅에 대한 의지가 강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은행원 정지현씨(31)는 "11~12월엔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1년치 소개팅을 모두 해치우는 것 같다"며 "심지어 주말엔 아침,저녁으로 소개팅에 나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평상시 잘 들어오지 않던 소개팅이 갑자기 쏟아지면서 연말이 더 부산하다.

평소에도 못 만든 애인이 크리스마스라고 갑자기 생기겠는가. 그래도 확률은 조금 높은 편이다. 예전 같으면 학력 직업 외모 등을 따져 아니다 싶으면 미리 걸렀지만 요즘은 웬만하면 그냥 만나 본다. 원하는 조건이 절반만 갖춰지면 바로 사귈 태세다.

하지만 가열찬 소개팅 후에 찾아오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건지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소모적인 만남으로 끝나기 일쑤여서 회의감,우울증으로 한 해를 마감할 위험이 높다는 것.그는 "그럴 바에야 차라리 '물 좋은' 클럽에서 눈요기나 하며 하룻밤을 멋지게 보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동병상련형

"쯧쯧~,니 친구들은 결혼해서 알콩달콩 보내는데 너는 뭐가 부족해서 이런 날 방바닥만 긁고 있냐."

부모님의 이 같은 핀잔을 듣느니 나가 노는 게 편하다는 정수인씨(33).다행히 같이 놀아 줄 솔로 친구들이 많아 연말이 외롭지 않다.

정씨는 이미 친구 4명과 한 달 전부터 미리 크리스마스 계획을 완벽하게 짜 놓았다. 시내 어디를 가도 다정한 커플들 속에서 마음이 편치 않은 시기인지라 서울을 뜨기로 작정한 것.작년까진 서울시내 호텔에서 파자마 파티를 했는데 올해는 사흘 연휴여서 따뜻한 부산에 가기로 했다.

정씨는 "마침 KTX-호텔 패키지가 싸게 나와 바로 샀다"며 "낮엔 해운대 센텀시티에서 쇼핑하며 스파도 즐기고,저녁엔 호텔 클럽에서 화끈하게 놀아 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크리스마스,연말이 각각 사흘 연휴여서 여행사들이 성수기를 맞았다. 2030 여성들을 대상으로 홍콩 여행 패키지를 판매한 캐세이퍼시픽은 한 달 전에 예약이 마감됐을 정도다.

◆혼자 놀기 달인형

솔로 생활에 길들여진 골드미스에겐 크리스마스나 연말이 설레거나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혼자 밥 먹고,공연도 보고,쇼핑도 하고….일에 쫓겨 시간이 없다 뿐이지 '혼자 놀기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많다. 5년째 연애와 담 쌓고 지내는 직장인 황재희씨(36)는 올해도 일에만 몰두하다 여름휴가를 걸렀지만 연차,크리스마스 연휴를 묶어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우선 하루는 신년맞이 의식처럼 방을 싹 정리했다. 1년간 써 온 일기장을 펼쳐 보며,조용히 한 해를 되짚어 보고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썼다.

"연초 세웠던 계획은 하나 빼고 다 이룬 것 같아요. 승진도 했고,어학 실력도 꽤 높였는데 연애만 못했네요. 내년으로 또 넘겨야겠네요. " 그래서 혼자만의 발리 여행을 예약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여름휴가를 연말에 한꺼번에 몰아 쓰는데 괜찮은 것 같다"며 "복잡한 서울에서 연말을 보내는 것보다 따뜻한 나라에서 최고급 패키지로 여왕 대접 받으며 여유롭게 쉬다 올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미스들은 주위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연말이 외롭지 않다. 오히려 싱글로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옵션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내느라 눈코 뜰 새 없다. 그래도 솔로 여성들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비는 소원은 단 한 가지뿐이다. '내년에는 반드시 멋진 애인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

글=안상미 기자/백상경 인턴/사진=강은구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