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아동을 조사하던 경찰이 캠코더 조작 실수로 진술을 재녹화해 피해자에게 고통을 줬다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경찰의 실수로 성폭력 피해사실을 반복 진술해야 했던 A양과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A(10)양에게 300만원, 어머니에게 200만원, 아버지에게 100만원 지급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2003년 성당 부설 유치원에 다니던 A양(당시 4세)은 신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어머니와 함께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피해 사실을 진술, 캠코더로 녹화했지만 경찰의 조작 실수로 녹화 내용이 모두 지워져 다시 피해 사실을 녹화해야 했다.

1ㆍ2심 재판부는 "만 6세 이하 어린 아동의 경우 처음 진술이 가장 중요하고 이후 반복되는 진술은 증거로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데다 그 자체가 아동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정도가 큰데 A양이 불필요하게 반복된 조사ㆍ녹화로 정신적 고통을 입었으므로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A양 가족은 고소한 지 한달이 지나서야 첫 조사를 하는 등 경찰이 늑장수사를 하고, A양 오빠를 가해자로 의심하는 등 부적절한 수사를 했다며 이에 대한 손해배상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조치가 위법하다고 평가하려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인정되거나 경험칙이나 논리칙상 도저히 합리성을 수긍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며 "진술 녹화내용이 지워진 부분 외에 수사절차상의 불법행위 책임이 없다고 본 원심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다른 성폭행 사건으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아동 5명의 가족도 경찰ㆍ검찰이 가해자와 대질신문, 무리한 합의종용, 수사절차 지연 등으로 정신적 고통을 줬다며 A양 가족과 공동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수사에 위법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noano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