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선회' 가능성 시사용 '저강도' 위협

북한이 대남 유화기조를 이어가는 가운데서도 최근 간간이 군사분야에서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12일 동해안에서 사거리 120km의 KN-02 지대지 미사일 5발을 발사한 데 이어 15일엔 해군사령부의 '보도'를 통해 남한 해군 함선들이 "어선단속을 구실로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NLL)을 고수"하기 위해 지난달 중순부터 북한 영해를 지속적으로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결코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이튿날인 13일 북한은 남한의 임진강 수해방지 실무회담과 적십자 실무접촉 제의를 즉각 수용하고 14일엔 임진강 회담에서 황강댐 방류로 인한 남측 인명 피해에 대한 유감과 유가족에 대한 조의를 표시했다.

북한은 15일엔 남한 해군의 '영해 침범'을 주장하고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지만 16일엔 남한과 적십자 실무접촉에 나설 예정이다.

유화와 강경이 혼재하는 북한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북미대화나 남북대화가 본궤도에 진입하지 않은 유동적인 상황에서 강온책을 양면구사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북미대화나 남북관계 복원에 적극성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협상이 본격화하지 않은 가변적 상황"이라며 "북한으로서는 '대화'에만 무게를 싣기보다는 대화가 열리지 않으면 언제든 강경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 양자대화의 재개를 저울질하고 있으나 제재를 철회하지는 않은 상황이고, 남북간 대화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선택적으로, 저차원의 대화만 입질하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이날 주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초청 오찬 강연 후 취재진과 만나 남북 고위급 회담에 대해 "아직은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도 남한과 미국에 자신들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동시에 실제로 다시 강경으로 선회할 통로를 열어두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북한 해군사령부가 '보도'에서 주장한 대로 남한 해군의 `북한 영해 침범'이 이미 9월 중순부터 "계단식으로 확대돼온" 것이라면 북한이 굳이 남북 당국간 대화가 재개되는 시점에 이런 주장을 내놓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최근 보이는 대남 평화.화해 기조가 국제사회의 제재와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의 결과이며 경제지원을 받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남한과 미국에서 나오는 점을 의식한 조치라는 것이다.

대북 전문가는 "북한의 최근 화해 행보가 지원 등을 노린 굴욕적인 행보라는 평가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고 결국 강경조치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굴복이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자신들도 불만이 많지만 대화를 하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북한의 대화 기조가 최근 산발적인 강수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 등과의 면담을 통해 대화 환경을 조성하고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시사한 상황에서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큰 흐름에선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북한 해군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시비는 올해 처음이지만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에도 6차례나 있었다.

따라서 북한의 NLL 시비나 단거리 미사일은 자신들의 '강경'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대화 기조의 탈선은 초래하지 않는 '저강도' 위협용으로 동원된 셈이다.

북한 해군사령부의 보도는 남한 해군의 '영해 침범'을 주장하면서 "북남관계를 또 다시 악화시키기 위한 계획적인 책동의 일환"이라고 주장, 남북관계의 호전 양상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16일로 예정된 남북 적십자 실무회담도 현재로선 그대로 열려 남북관계의 호전 분위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