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수사 논란에도 '선전' 평가

6개월째 이뤄진 '박연차 게이트'의 1심 재판이 종착역에 들어섰다.

상당수 기소자가 불법정치자금과 뇌물 등의 수수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범죄를 뒷받침할 뚜렷한 물증이 없어 유죄 선고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애초 예상을 깨고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무더기로 무죄가 선고되면 또다시 표적 수사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바짝 긴장했으나 이번 판결로 그동안 수사가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판정승을 거뒀다고 자평하고 있다.

16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된 기소자는 모두 21명으로, 이 중 현재까지 1심 재판이 마무리된 사람은 박 전 회장을 비롯해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14명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홍승면 부장판사)는 이날 탈세와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회장에게 징역 3년6월, 벌금 300억원을 선고했다.

박 전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 민주당 최철국 의원, 김종로 부산고검 검사 등 '박연차 게이트' 관련자 5명과 세종증권 비리 연루자 5명 등 10명에게도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박연차 게이트 관련 기소자 중 8명에 대해 실형(징역형)이 선고됐으며, 김원기ㆍ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 5명에 대해선 집행유예가, 민주당 최철국 의원에게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 같은 판결은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알선수재 사건 재판의 특성상 금품 제공자나 관련 증인들의 진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대부분 기소자가 주요 혐의를 부인해,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검찰로선 일단 선전한 셈이다.

이는 무엇보다 박 전 회장을 비롯한 핵심 증인들이 법정에 나와 진술을 번복하지 않고 수사 당시의 태도를 유지한 것을 재판부가 신빙성 있는 증거로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검찰이 박 전 회장에 대한 구형을 막판까지 늦추다 예상보다 낮은 형량(징역 4년)을 구형함으로써 박 전 회장의 '협조'를 끌어낸 전략이 통했다는 일부 시각도 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박 전 회장에게서 불법 자금을 받은 정치인이 더 있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사의 형평성을 훼손하고 정치적인 고려에 의한 표적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은 점은 남은 재판과 상급심에까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끝나지 않은 1심 재판은 이택순 전 경찰청장을 비롯해 이광재ㆍ서갑원 민주당 의원과 박진ㆍ김정권 한나라당 의원,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6건이다.

오는 18일 이 전 청장을 비롯해 23일 이 의원, 25일 김 의원에 대한 선고가 있을 예정이며, 서 의원과 박 의원은 각각 21일과 24일 결심공판이 잡혀있어 10월 초에 선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천 회장은 공소사실이 복잡하고 채택 증인이 많아 앞으로 2개월 이상 재판이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이한승 기자 abullapia@yna.co.krjesus786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