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질병의 대규모 전염이 우려되는 가을철을 앞두고 신종플루 사망자가 연이틀 발생해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신종플루가 폐렴 등 합병증을 일으키면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전염병이라는 게 국내에서도 입증됐다.

◆관리체계 허점 드러나

첫 사망자인 남성의 경우 태국 여행을 다녀온 뒤 지난 8일부터 발열 등의 증상을 보여 9일 지역병원 응급실에서 세균성 폐렴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신종플루 치료를 받지 못했고 12일부터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리렌자 등)를 투약받기 시작했다. 질병관리본부는 15일 신종플루 환자로 최종 확진했지만 이 남성은 이날 오전 사망했다. 만약 감염 가능성에 맞춰 항바이러스제 투약이 이뤄졌다면 생존했을 가능성도 높다.

두 번째로 사망한 60대 여성의 경우 증상이 지난달 24일부터 나타났으나 29일에야 의료기관을 방문해 신속한 치료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 환자의 직접적인 사인은 호흡곤란과 다발성 장기부전이다. 다발성 장기부전이란 폐 간 신장 중 두 곳의 기능상실이 일어나 심하면 장기기능 장애로 사망에 이르는 상태를 말한다. 이 환자는 해외여행이나 확진자 접촉이 없었던 데다 증상 전 마지막 외출이 22일 인근지역을 쇼핑한 것으로 나타나 신종플루를 의심하지 못하고 단순 폐렴으로 진단해 약을 처방했다.

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30일 다른 의료기관을 거쳐 같은 날 또 다른 병원의 응급실로 입원했다. 마지막 의료기관 응급실 도착 당시 환자는 저산소증이 심하고 폐에 물이 가득 찬 폐부종을 보여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항생제 투여를 받았으며 증상이 계속 악화됐다. 증상이 나타난 후 1주일째인 4일이 돼서야 처음으로 5일간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했지만 늦었다.

보건당국은 신종플루로 인한 추가 사망을 막기 위해 초기 환자대응 체계를 강화키로 했다. 우선 병원 등 의료기관에 폐렴이나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입원한 환자에 대해서는 신종플루 확진 전에도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기로 했다. 대유행 시에는 일정 기간 병 · 의원이 보유한 유전자검사 장비를 이용한 신종플루 확진검사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가을철이 고비

지난 5월2일 첫 환자가 확진된 신종플루는 학교나 군부대 등 집단 시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보건당국도 확산 자체를 막는 것은 힘들다고 보고 최근 사후 치료와 피해 줄이기로 대응 전략을 바꿨다.

16일 기준 전체 감염자 2089명 가운데 사망자는 2명에 불과해 아직은 지나치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보건당국의 설명이다. 전문가들도 크게 동요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박승철 국가신종인플루엔자대책위원회 위원장(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남미나 미국,유럽 등지의 신종플루 발생 사례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환자 수가 2000명을 넘은 시점에서 언제 사망자가 나오느냐는 시기의 문제였다"며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신 확보 서둘러야

만약 이번 사망의 원인이 바이러스 변이로 밝혀진다면 올 가을에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가을철 대유행을 막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백신 확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193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국민의 27%인 1300만명에게 백신을 접종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유행이 발생할 경우 1300만명분으로는 부족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의견도 의료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식약청은 신속한 백신 공급을 위해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거의 동시에 진행키로 결정해 녹십자는 이달 말께 전임상시험을 시작하고 다음 달 초부터 임상시험 참가자 모집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녹십자는 올해 500만명분의 신종플루 백신 생산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확한 생산 시기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정부가 지난달 다국적 제약사를 상대로 실시한 백신 경쟁입찰에는 지나치게 낮은 가격 탓에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아 재입찰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백신 확보 어려움 속에 9,10월에 대규모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11월에 접종을 실시하게 되면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