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릉 인근에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기자들 사이에 '절간'으로 불린다. 주변에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데다 건물 안에도 조용히 혼자서 일하는 연구원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KDI는 근래에 보기 드문 광경이 이어지고 있다. 머리에 띠를 두른 농성자들이 KDI 입구와 대회의장을 점거하고 연일 시위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10일부터 서비스업 및 금융시장의 진입 규제 장벽을 낮추기 위해 11개 업종에 대한 '경쟁제한적 진입규제 정비 토론회'를 열고 있다. 해당 업계에 진출할 수 있는 문을 넓혀 일자리를 창출하고 투자를 촉진시켜 내수부양으로 이어보자는 취지에서다.

관련업계 종사자들은 경쟁이 더 치열해지기 때문에 진입장벽 완화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토론회'는 형식적인 절차이며,이미 결정된 일을 갖고 진행하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실력행사를 벌이는 바람에 안경업과 이 · 미용업,자동차렌털업 등 총 8개 주제 중 4개 주제는 토론회가 제대로 이뤄지지도 못했다. 농성자들은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회의장을 점령해 구호를 외쳤고,참석이 예정돼 있었던 각 학계와 업계를 아우르는 전문가 패널들은 밖에서 애꿎은 담배만 물었다.

그러나 업계 종사자들의 우려와 달리 이번 공정위가 내놓은 진입장벽 완화 방안은 공정위의 의견일 뿐 부처 간의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일부 부처는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토론회가 열리는 것도 해당 부처의 의견과 업계 당사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기 위해서다.

이번 토론회에 참석한 한 부처 관계자는 "우리 부처는 공정위 안에 반대하고 있지만 토론회가 열려야 공정위의 방안을 좀더 공식적으로 비판하며 여론을 모을 수 있다"며 "업계 종사자들이 토론회 자체를 무산시키는 것은 오히려 의견 전달 창구를 스스로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14일 오후에는 주류 병마개 제조업,도매시장법인,가스사업 등에 대한 토론회가 예정돼 있다. '밥그릇'을 지키고 싶은 종사자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부를 비난하는 데만 연연하다보면 실제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는 기회조차 잃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

박신영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