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라톤워커힐,신라,힐튼.'서울 강북의 한 재개발구역 주민들이 지난 한 달간 구경한 서울시내 고급 호텔의 이름이다. 주민들은 이 고급호텔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디너쇼를 관람한 뒤 숙박까지 하는 경험을 했다.

지난 1일 시공사를 조합원 투표로 선정한 이 재개발지역에서 A건설사와 B건설사가 수주전을 벌이면서 보인 영업 행태는 최근 재개발 수주영업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양사가 격전을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초,B사가 2년간 공을 들여온 수주전에 A사가 뛰어들면서부터다. 광진구 구의1구역에서도 먼저 수주에 나섰다 A사에 시공권을 빼앗긴 바 있는 B사는 '이번에도 당할 수는 없다'며 총력전에 나섰고 두 회사는 사활을 건 수주전에 돌입했다.

이때부터 처음보는 30,40대 여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당 건설사를 홍보하며 조합원 표를 확보하는 일명 'OS(Out Sourcing · 건설사 홍보) 요원'이었다. 이들 요원은 15만~20만원의 일당을 받으며 현장을 누볐다.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 곳에서 빨래 등 궂은 집안 일까지 해주며 말동무로 접근했다.

시공사 선정 투표 한 달을 앞둔 7월 초부터는 회사별로 50명 정도였던 'OS요원'의 숫자가 150명,200명으로 늘어났다. 전체조합원 숫자가 678명인 이곳에서 1인당 3~4명씩 조합원을 전담마크하기 위해서였다. 각사는 조합원에게 나눠주는 선물을 화장지세트 등 생활용품에서 홍삼 진액이나 횡성한우로 가격을 높였다.

자사의 대표 재건축아파트를 견학하는 것으로 시작됐던 이벤트도 온천관광에 이어 서울 시내 고급 호텔의 1인당 40만원 상당 접대로 올렸다. 의도적으로 조합원이 운영하는 슈퍼마켓과 미용실의 매출을 올려주거나 최고 500만원의 '로비성' 돈을 주고 조합원 집을 'OS요원'의 화장실과 휴게실 용도로 일부 빌리기까지 했다.

지난 1일 시공사를 선정하는 투표가 진행됐지만 총회장에서 투표를 한 조합원은 전체의 30%뿐.나머지는 조합사무실에서 사전투표를 해서다. 사전투표를 했더라도 총회장에서 투표를 하면 결과가 뒤집히는 것으로 인정되는 만큼 건설사는 자사에 유리하게 투표한 조합원들을 총회 전날 1박2일 일정으로 관광을 보냈다.

총회장에서 상영된 홍보 동영상에서는 B사 로고가 망치에 깨지는 장면이 상영됐고,A사 로고는 번개를 맞고 떨어지는 장면이 나왔다. 이때마다 강성 지지자들은 환호와 야유를 보냈다. 결과는 B사의 141표 차 승리.전직 OS요원은 "재개발 수주전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과당 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