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주택시장은 외환위기 이후 2000년 대세상승기 초반의 판박이가 될 것인가. '

최근 심상찮은 서울 · 수도권 집값 오름세를 두고 전문가들의 해석과 전망이 엇갈리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극심한 실물경기 침체 상황과 여름철 비수기가 무색할 정도로 상승폭과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권 재건축아파트는 단기 상승 폭이 워낙 커서 한동안 사라졌던 '강남불패' 얘기까지 다시 퍼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부랴부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축소한 데 이어 주택구입시 자금조달계획서를 내야 하는 주택거래신고지역 확대까지 검토하는 등 집값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상황에 대해 대세상승기 초기 단계였던 2000년 상반기 상황과 비슷하다는 주장과 '국지적 반짝상승'에 그칠 것이란 의견이 맞서고 있다. 수요자들도 내집마련과 투자전략에 혼선을 빚고 있다.

최근 집값 불안의 표면적인 원인만 따져보면 2000년 대세상승 직전의 시장과 닮은꼴을 보이고 있다. 2000년 초반의 경우 정부의 규제 완화,풍부한 유동성,공급부족 등 주택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오름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외환위기로 인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1998년 분양가 자율화,1999년 분양권 전매제한 허용 및 재당첨 제한 폐지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었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가 더해지면서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 경쟁까지 치열해졌다.

이듬해인 2001년에도 정부는 당시 가격 상승세를 단기급등으로 평가하고,신규 취득 주택 거래세 감면 등 파격적인 부양책을 잇따라 내놨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면서 2001년 하반기부터는 강남 재건축아파트를 중심으로 전국 집값에 불이 붙었다. 이후 2003년부터는 열네 차례에 걸친 부동산 규제를 쏟아냈지만 집값안정에 실패했다.

최근 상황도 당시와 비슷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2007년부터 집값이 하향세로 돌아서고,이어 지난해 9월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자 정부는 침체된 주택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규제완화에 나섰다"면서 "특히 작년에는 건설사들의 도산이 잇따르고,지방 미분양이 16만채까지 치솟는 등 불황이 극심해지면서 규제완화 단계를 넘어 다양한 부양책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해 서울 강남 3구를 제외한 투기지역 해제,신규 분양주택 양도세 감면,일부 재건축아파트 용적률 상향 등 주택시장 활성화대책을 선보였다. 금리상황도 유사하다. 기준금리의 경우 2001년 네 차례의 인하 끝에 2003년 당시로는 사상 최저였던 연 4%까지 내려갔다.

올 들어서는 지난 2월 이후 연 2%의 낮은 콜금리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정부의 막대한 재정투자로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과 주택 수급불안도 비슷하다.

부동산시장으로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는 시중 유동성은 현재 800조원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2000년 당시에도 50조~60조원의 유동성이 있었다. 신규 주택공급도 크게 줄어 작년 분양주택은 37만1285채로 1998년(30만6031채) 이후 최저 수준을 보였다.

2000년 당시에도 외환위기를 겪으며 민간 건설사의 주택공급이 위축되면서 신규 분양이 크게 줄었다.

'2000년 판박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외환위기 때는 1999년부터 경기회복이 지표상으로 가시화되고,2~3년 후 집값이 탄력을 받는 등 미미하지만 경기 후행적 모습을 보였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전방위적인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물경기와 관계없이 선행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실물경기 회복이 받쳐주지 않는 요즘 서울 · 수도권 집값 상승은 '일시적 · 국지적 반등'에 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실물경기가 정부 기대대로 회복되지 않을 경우 부동산시장이 다시 침체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성급하게 규제카드를 써서는 안 된다"며 "자칫 규제 드라이브를 잘못하면 위기상태의 건설업계와 지방 부동산시장에 오히려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