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과천시 문원동에 사는 회사원 김진우씨(45)는 평일에는 서울 사당동에 있는 회사로 출근한다. 퇴근할 때는 대치동 학원으로 원정 수업을 들으러 간 중학생 아들을 데리러 간다. 주말에는 가족과 서울 양재동에 있는 할인점에 쇼핑을 하러 가거나 근처 안양역이나 범계역에서 영화를 본다. 김씨는 "과천의 장점은 도시가 깨끗하고 치안이 잘돼 있으며 주민들의 교육수준이 높다는 정도"라고 말한다. 주거지역 말고는 제대로 된 '상권'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베드타운의 한계 극복 못해

과천시는 1978년 9월 '과천신도시 개발사업'에 따라 조성된 도시다. 정부 제2종합청사를 과천에 건설해 행정기능을 분담시키면서 과밀화된 서울 도심인구를 분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건설됐다. 정부는 당시 과천면이었던 곳에 과천지원사업소를 두고 개발을 시작했고,1982년부터 1986년 사이에 정부 청사들이 옮겨갔다.

하지만 청사 이전이 시작된 지 30년이 가까워오지만 과천시는 아직 자족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역을 대표할 만한 산업체도 없으며 서비스나 관광산업이 발달한 것도 아니다. 정부청사가 있긴 하지만 과천의 도시 브랜드를 높이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 경제적인 유발 효과는 크지 않다.

물론 과천시가 청사 이전으로 지역경제의 구심적 역할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정부는 1978년 '과천신도시 개발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과천시의 기능을 행정도시와 서울 도심인구 분산을 위한 베드타운으로 한정시켰다. 이미 만들어질 때부터 서울의 부도심 역할이 주요 기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인근 수도권 도시들이 외곽을 급속도로 확장해온 점을 생각해보면 과천시는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과천시의 딜레마

현재 과천시의 전체 인구는 7만1171명으로 정부청사가 들어오기 시작한 1982년 4만1208명에서 3만명 가까이 늘어났다. 1986년 정부청사 이전이 완료될 때까지 2만명이 늘었으며 그 이후 23년간 1만명이 더 증가했을 뿐이다. 시 면적도 1986년 당시 35.78㎢에서 지금 35.85㎢로 0.08㎢ 커졌을 뿐이다. 인구 수가 적다 보니 과천시에서는 할인점,학원,영화관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대부분 인근 안양시의 평촌역과 범계역,서울 사당동과 양재동에 몰려 있다.

정부청사 입주에 따른 경제적 효과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행정도시라는 이미지가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올려주고는 있지만 자족기능을 채워줄 수 있는 기업이나 학교를 끌어들이진 못했다. 실제 과천시 안에서 대형 백화점은 뉴코아백화점 하나뿐이며 그나마 영업수지 보전에 적지 않은 애를 먹고 있다는 후문이다.

현재 과천시에 등록된 기업체 수는 51개.이 중 코오롱건설(850명)을 제외하고는 직원 수가 300명을 넘어가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공장으로 등록된 곳도 11개에 불과하고 이 중 7개는 인쇄소로,나머지는 495㎡(150평) 이하의 소규모 제조업체들이다.

과천청사의 세종시 이전을 두고 과천시청의 공식적인 입장은 '반대'다. 행정도시라는 과천의 대표적인 브랜드 이미지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청 내부에서는 다른 목소리들도 나온다. "과천시가 정부청사로 인해 얻는 경제적인 효과가 없는데 균형발전을 위해 굳이 세종시 내려가는 걸 반대할 필요가 있나" 또는 "오히려 현재의 청사부지에 대기업이 들어오면 지역 경제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대규모 유통시설 못 들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과천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깨끗하고 쾌적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값이 서울 강남권에 가까울 정도로 높게 형성된 이유도 뛰어난 주거환경 덕분이다. 실제 과천은 종합청사 이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계획도시여서 도로와 기반시설 정비가 잘돼 있다. 다른 지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재래시장도 드물다.

하지만 혜택은 거기까지다. 베드타운의 특성상 과천 주민들의 상당수는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소비 문화 레저 등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과천을 중심으로 과천~의왕 고속도로,외곽순환도로 등이 들어서고 남태령 고갯길이 확장된 것은 역설적으로 자족기능이 미흡한 과천 도시경제의 외부 의존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나마 과천청사로 가장 혜택을 보는 곳은 446개의 식당이다. 하지만 식당은 고용효과가 제한적이고 공무원들을 위한 '점심 장사'에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도시의 식당들보다 평당 매출이 크지 않다는 게 시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울 부도심만 가도 즐비하게 펼쳐져 있는 유흥업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과천 경제활동의 한 단면이다.

시청 관계자는 "현재 과천시 전체면적의 89.69%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는데 인구와 산업 유입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면 이도 풀어지지 않았겠느냐"며 "경제만 놓고 보면 과천은 정체된 도시"라고 말했다.

과천시 별양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정부청사가 있으면 도시의 이미지상 좋지만 시장성이 부족한 단점이 있다"며 "주민들의 생활패턴을 보면 대규모 유통시설이 들어오기도 힘든 여건"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