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별세한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로서의 영광만큼이나 아동 성추행 혐의 등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다.

다음은 마이클 잭슨의 삶과 음악세계의 변곡점을 간추린 연보.

◇1969년 레코드 계약 체결 = 1958년 아홉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6살 때인 1964년 형제들로 구성된 그룹 '잭슨 파이브'에 합류했다.

잭슨 파이브의 막내였던 마이클 잭슨은 대중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리드 보컬로 활동했다.

1969년 흑인음악 전문 음반사 '모타운'과 레코드 계약을 체결, 첫 번째 넘버원 싱글 '아이 원트 유 백(I Want You Back)'를 히트시키며 미국 팝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 당시 마이클 잭슨은 고작 11살이었다.

◇1975년 모타운과 결별 = 잭슨 파이브는 더 나은 계약 조건을 제시한 CBS 레코드와 계약을 맺기 위해 모타운과 결별하고, 모타운은 잭슨 파이브를 상대로 2천만달러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978년 퀸시 존스와의 만남 = 마이클 잭슨은 음반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손잡고 디스코 풍의 솔로 앨범 '오프 더 월(Off the Wall)'을 발표, 솔로 가수로도 성공을 거둔다.

오프 더 월은 1천만장 이상 판매됐다.

◇1982년 '스릴러'의 대성공 = 오프 더 월의 성공도 1982년 발표한 앨범 '스릴러(Thriller)'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빌리 진(Billy Jean), '비트 잇(Beat It)'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전무후무한 판매기록을 세우며 팝의 역사를 다시 썼다.

명실상부한 '팝의 황제'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1984년 루머에 휩싸이다 = '스릴러'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잭슨은 펩시콜라 광고를 촬영하다 갑작스런 화재로 머리카락을 태우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때부터 '잭슨이 산소 텐트에서 잠을 잔다'는 등 그를 둘러싼 루머들이 떠돌기 시작한다.

◇1991년 '데인저러스'의 성공 = 각종 루머에도 불구하고 앨범 '데인저러스(Dangerous)'를 히트시키며 팝계의 최고 스타임을 재확인시켰다.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 = 11살 소년 조디 챈들러 부모는 잭슨을 아동 성추행 혐의로 잭고소한다.

잭슨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결국 챈들러의 부모와 2천330만달러에 합의한다.

이 사건으로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은 잭슨은 1994년 잭슨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자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으나 2년도 못 가 파경을 맞았다.

◇1997년 아버지가 되다 = 잭슨은 간호사 데비 로우 사이에서 아들 프린스 마이클, 딸 패리스 마이클 캐서린을 얻으며 행복한 한때를 보냈으나 로우와도 1999년 이혼한다.

◇2001년 '인빈서블'의 실패 = 아동 성추행 혐의와 잦은 성형수술에 따른 부작용 등으로 하락의 길을 걸었던 잭슨은 2001년 앨범 '인빈서블(Invincible)'을 내놓았지만 재기에 실패한다.

◇2003년 체포와 재판 = 경찰은 14세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잭슨의 대저택 네버랜드를 급습했다.

잭슨은 경찰에 자수, 체포된다.

2005년 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지만 '팝의 황제'의 이미지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는다.

◇2009년 컴백 = 잭슨은 런던 O2 아레나에서 컴백 콘서트를 가질 예정으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내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yunzh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