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보상 문제 국가 차원서 논의해야할듯"

1969년 일어난 'KAL기 납북사건'의 납북자 유족이 퇴직금ㆍ임금ㆍ유족보상금 청구 소송을 냈지만, 피랍이 어쩔 수 없는 재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박기주 부장판사)는 영동방송(현 강릉MBC) 강릉방송국 기자로 근무하던 중 탑승 여객기의 납치로 납북된 김모씨의 유족 8명이 강릉MBC를 상대로 낸 1억원의 퇴직금ㆍ임금ㆍ유족보상금 청구 소송에서 12만5천637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25일 밝혔다.

원고 일부 승소지만 미미한 지급액과 원고측에 부담시킨 소송 비용을 고려하면 사실상 패소한 셈이다.

지급액은 퇴직금에 연 5%로 계산한 39년간의 이자를 더한 것이다.

납북 당시 입사 1년6개월째던 김씨의 월급은 2만2천50원으로, 휴직처리될 때까지 2년의 퇴직금을 계산하면 4만2천589원이다.

재판부는 퇴직금 청구 시효가 살아있는 것으로 인정했지만,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야 한다는 원고측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퇴직금 외에 미지급 임금, 휴업보상금, 유족보장금, 위자료 등 나머지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납북은 회사측 책임이 없는 불가항력적인 재해인 데다, 유족 보상의 근거가 되는 근로기준법상의 '업무상 사망'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재판장인 박기주 부장판사는 "민법상 보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며 "납북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따로 논의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씨는 1969년 12월11일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의 고정간첩에 의해 납치된 강릉발 서울행 대한한공 소속 YS-11의 탑승자 51명 중 1명으로, 이듬해 39명은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지만, 김씨와 승무원 등 12명은 제외됐다.

생사 불명의 실종 상태로 있던 김씨는 2005년 법원으로부터 납북 5년 만인 1974년 12월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는 선고를 받았다.

'KAL기 납북사건'은 남북 간 첫 항공기 납치사건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