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대 중반 동양챔피언으로서 주먹을 과시했던 40대 복서 출신이 환경미화원이 된 사연과 그의 험난한 인생 역정이 복싱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고 21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주인공은 서울 중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인 최재원(43)씨.

최씨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복싱이 큰 인기를 끌었던 1989년 최씨는 동양주니어페더급 챔피언이 됐고 국내서 18전 전승을 거두며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1위도 차지해 유명세도 탔다.

호세 술레이만 세계복싱협의회(WBC) 회장이 지난 20일 서울의 한 호텔에 역대 한국인 세계, 동양 챔피언을 초청한 자리에도 모습을 보였다.

링 위에서는 무서울 게 없었던 그였지만 링 밖에서는 힘든 시기를 적지 않게 겪었다.

1994년 7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윌프레도 바스케스(푸에르토리코)와 세계타이틀매치에서 패하고 나서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일본으로도 진출해 4경기를 더 치른 뒤 은퇴한 그는 복싱 팬들의 기억 속에서도 점차 사라졌다.

20년간 복싱이라는 외길만을 걸어왔기에 그가 맞닥뜨린 사회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탓에 직장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최씨는 개인 사업은 물론 노점상 단속과 자동차 선팅 작업, 웨이터 보조 등 온갖 궂은 일을 다 해봤다.

사업에 잇따라 실패해 빚도 늘고 생활고에도 시달리면서 10년간 함께 살았던 아내와도 이혼했다.

그러다 2003년 8월 마침내 안정된 생활을 할 발판을 마련했다. 서울 중구청 환경미화원 공채 2기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남대문 주변과 회현동 일대를 청소하는 최씨가 안정된 직장을 원했던 주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외아들 용환(19)군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환경미화원 월급으로는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하고서도 야구를 계속 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결국 훈련비에 부담을 느낀 아들은 야구를 그만두었다.

최씨는 "아들이 야구를 계속 할 수 있게 하려고 환경미화원이 됐지만, 빚이 계속 늘어나 더는 지원하기가 어려웠다"고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아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복싱 글러브를 꼈다. 주먹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물려받은 탓인지 아들은 금세 두각을 나타내 복싱을 시작한 지 7개월여 만에 서울 신인선수권대회에 준우승, 전국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최씨는 다음 달 군에 입대할 예정인 아들과 함께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이다.

이 때문에 작년부터 월급 가운데 10만~20만원을 한 달치 용돈으로 쓰고 나머지 전액은 모두 저금통장에 넣어 두고 있다.

그는 "60세 나이로 퇴직할 때까지 열심히 돈을 모아 나중에 체육관을 운영할 계획"이라면서 "경험도 있고 복싱 이론에서도 누구보다 자신 있다. 저는 관장을 맡아 후배를 양성하고 아들은 사범이 맡았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복싱을 하다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청소가 정신적으로는 더 힘들다. 복싱은 한 명만 이기는 걸 생각하면 됐는데 청소를 하다 보면 100명이면 100명 다 상대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쓸었던 깨끗한 거리를 외국인들이나 사람들이 거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상쾌하다"고 했다.

이어 "청소부라는 직업을 꺼리는 사람도 있지만, 저로서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저는 이 일에 긍지를 느낀다"면서 "한 때는 복싱 챔피언이기도 했지만 지금 하는 일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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