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좋은 그림' 판별 법
서울 강남의 한 중견 화랑 주인은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컬렉터가 '작품 가격 부풀려 팔기' 혐의로 그를 덜컥 고소를 해버린 것이다.

문제가 된 작품은 영국 출신 현대화가 데미안 허스트의 2007년작 '때묻지 않은 사랑'과 '나의 사랑은 순수하다' 등 2점.컬렉터는 이들 작품을 7억원에 샀지만 시가는 4억원 정도인 만큼 거래를 알선한 화랑과 원주인에게 차액을 물어내라고 주장했다. 화랑 측은 매매 당시보다 작품 가격이 떨어졌을 뿐 부풀려 판 것이 아니라고 맞섰다.

주변의 설득으로 컬렉터는 결국 고소를 취하했으나 우리 미술시장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요즘 미술시장에선 이와 비슷하게 작품값 급락으로 손해를 봤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화랑으로 그림을 들고 와서 판 값에 되사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06~2007년 미술시장이 한창 달아올랐을 때 그림을 산 사람 중에 심한 경우 값이 30% 이하로 떨어져 큰 손해를 봤으니 그럴 만도 하다.

당시 열린 한 중견작가 개인전에선 출품작이 매진되자 아무 작품이나 구해달라는 대기수요자가 100명이 넘었을 정도로 과열돼 있었다. 일종의 '묻지마 투자'현상이 나타났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극소수 인기작가의 작품이나 값이 싼 소품들 말고는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침체 속에서도 가격을 유지하는 '좋은 미술품'을 고르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한 작가는 5만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돼 거래되는 작가는 500명 미만으로 추산된다. 작품의 질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같은 작가의 비슷한 크기 작품이라 해도 수작과 태작 사이엔 몇 배씩 차이가 난다. 게다가 동양화 서양화 구상 추상 등 어느 것이 유행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근래의 미술시장 활황 속에서도 동양화와 추상화는 철저하게 소외됐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단기 차익을 노리는 미술품 투자는 대박과 쪽박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어떤 작품이 반드시 오르거나 내린다는 소문을 믿고 투자하는 경우에는 실패하기 쉽다. 노련한 컬렉터들조차도 '바로 이 작품'이라고 딱 집어 말하길 꺼린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미술시장의 속성이 그렇다. 개인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하는 데다 좋은 작품에 대한 시장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쉽지 않은 탓이다.

최근 서울 인사동에서 수십년간 화랑을 운영해온 화상(畵商)을 만나 좋은 그림 판별법을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있으면 집 거실에 걸어 놓고 시간 날 때마다 바라봅니다. 어떤 작품은 처음엔 좋아 보이다가 며칠만 지나면 싫증이 나는 반면 어떤 작품은 볼수록 빠져들게 되지요. 물론 빠져드는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값이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좋아하는 작품 감상한다는 생각으로 오랜 기간 갖고 있다보면 오를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

한마디로 자신의 기호와 시간에 투자하라는 조언이다. 미술품을 돈으로 재단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어느 분야에서나 과한 기대는 실망을 부르게 마련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