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를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할 핵심 인물로 지목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해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지난 10일 범죄사실 소명 부족으로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 바 있는 만큼 이번에는 불법자금(13억원)이라는 뚜렷한 물증을 확보해 영장을 재청구했다. 검찰은 추가로 발견된 뭉칫돈이 정 전 비서관 개인 차원의 비자금인지,노 전 대통령을 위한 비자금인지 등을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전 비서관은 2006년 8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그의 비서실장 정승영 정산개발 대표를 서울역에서 만나 3억원을 전달받은 뒤 서울 L호텔로 이동,이를 지인 2~3명의 차명계좌로 송금했다. 검찰은 또 이 계좌에서 박 회장이나 정대근 전 농협 회장,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이 아닌 복수의 제3자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10억여원이 입금된 사실도 밝혀냈다. 검찰은 3억원 부분에 대해서는 뇌물수수 혐의를,10억원 부분에 대해서는 알선수재 등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에게 뇌물을 공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2~3명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부끄럽다"는 심경을 고백하며 수수 사실을 모두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여러번의 자금세탁 과정을 거쳤는데 13억원 중 일부는 쓰였지만 대부분 남아 있다"며 "자금 용처에 대해 확인할 부분이 있어 수사 중이며 (재직시 공금 등) 횡령 가능성도 두루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비서실의 인사관리와 재무 · 행정 업무,국유재산과 시설 관리,경내 행사 등 청와대 안살림을 책임지는 직책인 만큼 공금을 횡령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이 돈이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앞두고 정 · 재계에서 보내온 축하금을 모아놓은 것이 아닌지도 살펴보고 있다. 앞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앞두고 정 전 비서관이 정대근 전 농협 회장으로부터 3만달러를 받은 혐의를 밝혀냈다.

검찰은 권양숙 여사가 "3억원을 내가(정 전 비서관에게) 지시해 받았으며 채무 변제용으로 모두 사용했다"고 한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난 만큼 노 전 대통령 측이 범죄 혐의를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짜맞추기'를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첫번째 사과문에서 "정 전 비서관의 것이 아니라 저희 집 쪽에서 받아 쓴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정 전 비서관의 진술이 바뀌고 권 여사도 이 같은 취지로 주장했으나 사실 공무원의 뇌물수수 혐의를 벗어나기 위한 의도적인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 같은 노 전 대통령 측의 행동을 '사법방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향후 재판 과정에서 그동안 모은 정황 증거 및 박 회장 등 관련 피의자와 참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높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이날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를 다섯번째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연철호씨와 건호씨가 받은 500만달러 중 엘리쉬&파트너스에 투자된 300만달러 외에 오르고스와 A사 등에 투자된 금액의 최종 용처를 규명하기 위해 건호씨가 미국에서 사용한 계좌내역과 환전내역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건호씨를 외국환거래법 위반,권 여사를 형법상 증거인멸 또는 범인은닉 등의 혐의로 처벌할 수 있지만 이번 수사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노 전 대통령이기 때문에 이들을 사법처리하지는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비서관의 영장실질심사는 21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며 검찰은 영장이 발부되면 정 전 비서관을 상대로 그동안 밝힌 (노 전 대통령 측이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500만달러와 100만달러,그리고 13억원에 대한 조사를 모두 끝낸 뒤에 노 전 대통령의 소환 일정을 확정할 방침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