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손목시계
250억원대의 재산을 소유한 그녀가 다이아몬드나 사파이어가 줄줄이 박힌 '초특급 제품'을 줄 것으로 예상한 사람들이 많았으나 그 대신 최고의 무브먼트를 갖췄으면서도 튀지 않는 디자인의 파텍 필립을 선물했기 때문.시계라는 예물 하나로 자신의 남자가 대중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기 바라는지를 잘 표현했던 것이다.
손목시계가 남성 패션의 핵심 아이템으로 부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롯데백화점의 1분기 시계 매출은 작년보다 30%나 늘었고 CK, 티쏘, 라도, 론진 등을 팔고 있는 '스와치 편집숍'은 무려 134%의 판매신장률을 보였다. 현대백화점도 올 들어 브레게, 롤렉스, 바쉐론 콘스탄틴, 블랑팡 등 1억원이 넘는 최고급 시계 매출이 38%나 증가했다.
불황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자 백화점들은 시계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장을 늘리는 추세다. 고객은 주로 20~40대 남성.각기 다른 브랜드의 시계를 3~4개씩 사서 옷에 맞춰 번갈아 차는 경우도 적지 않다니 '열풍'이라고 부를 만하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웬 시계 타령이냐고 딴죽을 걸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시계를 택한다면 구태여 흠잡을 일도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패션 코치인 팀 건은 "패션은 일종의 기호학이어서 그 사람의 생각과 문화가 모두 나타나는 징표"라고 했다. 시계도 단지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라 착용한 사람의 취향과 인격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봉황 문양이 들어간 '대통령 시계'를 차든,짝퉁을 차든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 시대다. 명품시계는 보통 400~500개의 부품을 2~3개월 동안 손으로 정교하게 짜맞춰 만들어진다. 일종의 혼이 담긴 시계다. 좋은 제품을 가려내는 안목과 브랜드에 대한 존중을 섞어 당당하게 산 것이라면 비싸다 해도 문제될 게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시계의 값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고 선택했는지'가 아닐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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